나무의 얇은 가지에서 자그마한 봉오리가 열리기 시작했다. 봄이 온단 증거다. 봄은 어떠한 향과 함께 온다. 신입생이 된 지 4년이 흘렀지만 봄은 여전히 나에게 새내기가 처음 됐을 때의 풋풋한 향을 전한다. 대다수 부산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온 학생들이 그렇겠지만, 새내기 때 나는 어느 하나 익숙한 것이 하나 없었다. 그런 와중에 코로나 팬데믹으로 멈춰버린 캠퍼스 탓에 학과 생활도, 동아리 활동도 열심히 하지 못했다. 그렇게 어영부영 첫 대학 생활 1년이 흘렀다.
2학년이 된 2023년에서야 ‘정체됐음’을 느낀 나는, 지금 내가 있는 부산대언론사 <채널PNU>에 지원했다. 고등학교 시절 관심 있던 ‘기자’라는 직업을 체험해 보고 싶단 마음이었다. 처음엔 지원했다는 사실만으로 막연히 동경했던 기자라는 직업에 한발짝 다가선 것 같아 내가 대견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첫 취재부터 녹록지 않았다. 취재원은 쉽게 구해지지 않았고 교내 교수님마저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다. 취재엔 밤낮이 없었다. 아마추어 학생기자였지만 기성 언론 기자들처럼 유명한 대학교수를 인터뷰하거나 천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가득한 공간에서 취재할 일도 잦았다. 적막한 분위기 속에서 ‘찰칵’ 소리를 내는 것마저도 어색했지만 <채널PNU>라는 이름이 붙은 카메라와 기자증, 명함이 주는 힘은 컸다. 속으로 “나는 기자다!”라고 외치면서 취재에 임했던 기억이 난다. 일련의 사건들로 기자에겐 용기와 사명감이 있어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취재라는 고난 끝에 나온 기사를 마주하면 기분은 또 색달라진다. 내 노력이 담긴 기사가 세상 밖으로 나올 때만큼 뿌듯한 건 없었다. 애석하게도 엄청난 시련과 고난이 섞인 기사일 때 더욱 그렇다. 취재팀 정기자 시절, 정부의 R&D(연구개발) 예산 삭감에 대한 기사를 썼다. 예산 삭감에 대한 우리 대학 기초 연구계 관계자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 대한화학회 회장, 자연과학대 학생회, 대학원 지망 학부생 등 다양한 관계자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바쁘고 힘들었지만 이렇게 뿌듯한 경험은 처음이었다. 내가 그들의 목소리를 들었다는 것, 그것을 기사라는 매체로 전달했다는 것, 그리고 다른 이들이 내 기사를 통해 이 소식을 접하고 대안을 모색한다는 것. 이 모든 것들이 새로운 나를 만들었다.
비록 현재 진로를 기자로 확정 지은 것은 아니지만 학생기자로, 편집국장으로 <채널PNU>에서 활동한 시간은 어느 직업을 가더라도 나에게 빠른 적응력을 심어줄 것이라 확신한다. 이 경험을 하지 못했다면 교수에게 메일 한 통 보내봤을까? 구청에 전화해 행사가 취소된 상황에 대해 자세히 물을 수 있었을까? 경찰 콘퍼런스에 취재기자로 참석할 수 있었을까? 이 모든 경험들은 어떤 환경을 마주하더라도 단단해질 수 있는 나를 만들었다.
올해 초 마케팅 회사에 취직한 전 <채널PNU> 국장은 ‘기자 하던 분은 다르구나. 신입 중에 가장 업무 메일이 능숙하고 잘하더라고요’라는 말을 상사로부터 들었다고 한다. 현재 신입사원으로 고군분투하고 있는 그는 <채널PNU>에서 주어진 기회에 열심히 응한 경험은 정말 삭제할 것이 없었다고 나에게 전해주기도 했다. 만일 1학년의 나처럼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하는 학생이라면, 그리고 새로운 것에 직면할 용기를 얻고 싶다면, <채널PNU>에서 직접 부딪혀볼 것을 추천한다. 도전은 다른 낯선 환경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길러준다. <채널PNU>는 여러분에게 그런 용기를 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