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주요 행사마다 언론사 국장들을 찾아요. 동문이신 한강 작가님이 노벨문학상 수상할 때 대학본부 추천 덕에 스톡홀름 시상식에 참석하고 취재도 했어요.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죠.”
지난 여름방학을 앞두고 부산대언론사 <채널PNU> 국장들이 찾은 서울권 대학언론사의 풍경은 우리와 매우 달랐다. 서울대 학보사인 대학신문은 학생기자들을 위한 수면실과 샤워실, 세탁실 등 전용 공간을 갖췄고 활동비 규모도 컸다. 이화여대 언론사는 매년 학생기자를 선발해 해외 취재를 지원했다.
하지만 우리 국장들을 사로잡은 건 이런 물질적 지원 제도보다 대학언론과 그 활동을 존중하는 학내 구성원들의 인식과 태도였다. 그곳의 대학본부는 언론사를 총학생회와 같이 학생자치의 핵심으로 여기고 있었다. 이화여대는 학생들이 대학언론을 불합리에 맞서 싸우는 학생들의 동반자로 여기고, 서울대는 총장이 직접 언론의 존재 가치를 공인하고 기자들을 격려한다고 했다. 언론사를 단순한 학내 부속기관이 아니라 주요 기관으로 대우하고, 학생기자를 공동체의 공적 대변자이자 감시자로 여기는 인식이 전반에 깔려 있기에 가능한 모습이었다.
최근 한 대학언론 연구자로부터 “부산대언론사만큼 캠퍼스 저널리즘을 제대로 실천하는 곳은 드물다”는 평가를 받고, “‘학교의 보물’이 부산대언론사인 것 같다”는 한 국회의원의 국정감사 발언을 들을 정도로 지난 몇 년간 성장해왔다고 자부하는 우리였지만 서울권 대학에서 본 그것들은 우리가 지금껏 성장한 것보다 더 부러운 면모였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채널PNU> 학생기자들이 처한 상황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학기부터 유독 학생기자들은 취재할 때마다 취재원으로부터 무시와 견제를 당하는 건 물론이고 취재원에게 책임지지 못할 발언을 듣기도 했다. 민감한 사안이라는 이유만으로 정당한 질문조차 공격으로 받아들일 때마다 상처는 온전히 학생기자의 몫이 됐다. 기자에게 취재 출처를 따지는가 하면, 학생기자가 감히 취재했을리 없다며 기사를 내리라는 노골적인 외압도 있었다.
한편으론 이해된다. 대학언론이 외면하고 싶은 진실을 직시하게 만드는 불편한 거울이기 때문이다. 대학언론의 기능이 경쟁 지표처럼 가시화되지 않으니 평가 절하할 수 있다. 언론사도 학내 기관이니 듣기 좋은 말만 하길 기대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적 기능의 책임이 대학언론에 있음을 외면할 수 없다. 공동체 내 권력을 감시하고 다양한 의견이 충돌하며 조율되는 건강한 공론장을 만드는 것은 대학언론의 존재 이유이며, 수치로 환산할 수 없는, 공동체의 건강성과 지속 가능성에 깊이 연결된 핵심 기능이다.
또한 ‘시끄럽지만 않으면 그만’이라는 인식은 학내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협하는 위험한 발상이다. 언론의 자유와 독립성이 보장될 때, 비로소 대학 공론장은 제 기능을 할 수 있다. 진실을 외면하려는 유혹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대학이라는 학문의 전당에서조차 이를 견제하고 성찰하는 구조가 없다면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역시 흔들릴 수밖에 없다.
총장직선제를 외치며 투신해 대학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했던 우리 대학 故고현철 교수가 떠난지 10년을 맞아 지난 8월 열린 학술대회의 주제는 공교롭게도 ‘대학 공공성의 위기’였다. 그 자리에서는 “학문과 자율성이 존중돼야할 대학이 경쟁과 시장 논리에 잠식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이는 대학언론을 대하는 인식과 자세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학언론을 공동체의 필수적 기능으로 존중하고 학생기자를 자랑스러운 구성원으로 대하는 다른 대학의 모습은 학내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거나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학교의 보물 아닐까. 민주주의를 숨 쉬게 하는 대학의 노력은 언론을 대하는 태도에서부터 시작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