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권혁철(정보컴퓨터공학) 교수
-'국민 한국어 맞춤법 검사기' 제작자
-정년 1년 남기고 챗GPT 출현에 놀라
-"챗GPT 두려워하기 보다 활용해야"
-"AI를 가르치는 건 결국 인간"

온라인 ‘한국어 맞춤법 검사기’는 글쓰기를 직업으로 삼는 직업부터 그렇지 않은 직업까지 분야를 가리지 않고 ‘즐겨찾기’해 두는 프로그램이다. 후발주자로 네이버와 다음과 같은 포털 사이트가 맞춤법 검사 기능을 제공하지만 한국어 맞춤법 검사기를 대체하진 못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근거해 정확하고 세심하게 오류를 잡아내기 때문이다. 이 검사기는 우리 대학 권혁철(정보컴퓨터공학) 교수가 개발해 ‘부산대 맞춤법 검사기’로도 불린다.

한국어 맞춤법 검사기의 경쟁 상대는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권 교수의 정년퇴임을 한 해 앞두고 새로운 적수가 나타났다. ‘챗GPT’다. 아직 한국어 맞춤법 검사기에 비해 성능은 떨어지지만, 검사기가 잡아내지 못한 문장을 인식해 수정하기도 한다. 권 교수는 요즘 챗GPT와 씨름하며 한국어 맞춤법 검사기의 약점을 보완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머릿속에서 챗GPT에 대한 내 기대가 너무 높아졌다”면서도 “마음속에선 챗GPT가 문장을 고치지 못하길 바란다”고 했다. 스스로 ‘인생의 두 번째 도전이자 위기’를 만났다는 권혁철 교수를 지난 2월 20일 <채널PNU>가 찾았다.

지난 2월 9일 연구실에서 만난 권혁철 교수.  [전형서 기자]
지난 2월 9일 연구실에서 만난 권혁철 교수. [전형서 기자]
권혁철 교수가 지난 2월 13일 연구실에서 한국어 맞춤법 검사기에 새로운 규칙을 집어넣고 있다. [전형서 기자]
권혁철 교수가 지난 2월 13일 연구실에서 한국어 맞춤법 검사기에 새로운 규칙을 집어넣고 있다. [전형서 기자]

△챗GPT가 한국어 맞춤법 검사기만큼 잘 고칩니까.

-챗GPT를 며칠 조사해 보니 꽤 잘해요. 우리와 다른 방식의 심층학습(딥러닝) 덕에 우리는 도저히 고칠 수 없는 문장을 고치기도 합니다. 저희로선 그걸 도입하려면 엄청난 비용이 들기 때문에 극복할 방법을 고민하고 있어요. 10년 전, 영상을 평생 연구해 온 교수가 AI의 심층 학습에 의해 (연구에 대한 노력이) 다 깨져 버리고 나서 그러더군요. “도대체 내 인생이 뭐냐”고요. 저 같은 사람들이 느끼는 건, 자기가 쌓아온 게 한 번에 무너져 버릴 수 있다는 우려죠.

△어떻게 맞춤법 검사기가 못 고친 걸 챗GPT가 고치는 겁니까.

-구동 방식이 좀 다릅니다. 맞춤법 검사기는 ‘이런 건 이렇게 고치면 된다’고 규칙을 만들면, 틀린 사례를 규칙에 따라 고치는 겁니다. ‘결제’와 ‘결재’를 예로 들자면, 결재는 서류와 관련된 단어를 다 넣고, 결제는 돈과 관련된 단어를 다 넣어 줘야 해요. 그런데 챗GPT의 심층 학습은 예시를 보여 주면 규칙을 스스로 학습합니다. 카드로 ‘결제’한다든지, 자금을 ‘결제’한다든지. 이런 예시를 5개만 주면 그다음부터는 문맥을 이해하고 자금뿐만 아니라 비자금 결제나 수수료 결제같이 생소한 문제도 다 풀어 버려요. 짐작하기엔 챗GPT도 한국어 맞춤법을 고치기 위해 1년 이상 투자한 것 같아요.

△맞춤법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챗GPT의 기본 원리도 그런 식인가요.

-그렇죠. 심층 학습은 막대한 양의 데이터를 집어넣고, 거기서 통계적으로 가장 보편적인 대답을 하는 거예요. AI(인공지능)는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탄생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넣은 데이터에서 탄생한 겁니다. 맞는 말을 하든 틀린 말을 하든, 가장 많은 자료가 있는 걸 들고 오는 거죠. 그렇다고 한계는 없을까요? 아니에요. 반대로 생각하면 통계적으로 빈도가 낮은 문장은 못 고친다는 겁니다. 얼마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알파고보다 훨씬 뛰어난 바둑 AI를 미국의 아마추어가 15판 14승으로 이겼대요. 약점을 공략했기 때문입니다. 바둑을 정도대로 두는 게 아니라, 통계적으로 나오지 않은 예시로 돌발 행동을 하면 예상을 못 하는 거죠.

△한국어 맞춤법 검사기가 챗GPT에 따라잡힐까요.

-제가 봤을 때는 6개월 정도 열심히 하면 챗GPT가 잘하는 부분을 어느 정도 따라잡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러려면 현재보다 시스템을 훨씬 정교하게 만들어서 우리도 챗GPT가 사용하는 다른 방식의 심층 학습을 도입해야 하겠죠. 약점도 많이 찾았어요. 저한테는 두 번째 위기인 동시에 도전인데요. 챗GPT를 잘 반영하면 경쟁도 되고, 저희가 만든 맞춤법 검사기를 더 고도화시킬 수도 있을 겁니다. 결과적으로 이길지, 질지, 아니면 공존할지 그건 모르겠어요. 저한테는 새로운 출발점이니까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요즘 제일 하고 싶은 건 교수를 빨리 관두고 챗GPT와 한번 싸워 보는 거예요.

문제는 본격적으로 싸우도록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려면 엄청난 비용이 든다는 겁니다. 저는 여태까지 한국어 맞춤법 검사기에 제 철학이 사라지고 상업주의적으로 비칠까 봐 광고를 넣지 않았는데요. 광고를 넣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맞춤법 검사기는 어쩌다 만들게 되신 겁니까.

-1980년쯤 컴퓨터공학을 배우며 컴퓨터에 한글을 입력하려는데, 입력할 방법이 없으니 두 줄로 나눠 자음과 모음을 따로 써야 하더라고요. (너무 불편해서) 컴퓨터에서 한글을 바로 써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처음엔 단순히 글자에 관심을 가진 건데, 나중엔 언어에도 관심이 가더군요. 석사 과정 2학년 말에 지도교수님께 한국어 처리를 연구해 보자고 설득했더니, 한 달 정도 고민한 후에 한번 해 보자고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시작한 게 여기까지 온 겁니다.


권 교수는 서울대 2학년이었던 1978년, 그해 신설된 전자계산기공학과(현 컴퓨터공학부)에 들어갔다. 학점이 좋지 않아 원하던 물리학과에 갈 수 없어 친구에게 "네 마음대로 넣어 봐라" 해서 돌아온 선택이었다. 놀랍게도 그것은 권 교수의 인생을 바꿨다. 1984년부터 한국어 컴퓨터 처리에 빠져들어 고려대, 서울대 그리고 이화여대의 국문과, 독문과, 영문과, 철학과 교수들과 ‘형식 문법 연구회’를 조직해 언어학을 배우는 동시에 인공지능을 연구했다. 이제 컴퓨터에 한글 입력이 겨우 가능하게 된 시절이었다.

한국어 맞춤법 검사기는 그 결과물이다. 1991년 발표된 우리나라 최초의 맞춤법 검사기인 한국어 맞춤법 검사기는 현재 하루 평균 30만 건, 입시·입사철에는 200만 건의 글을 검사한다. 우리 대학 학부생 전체가 매일 검사기를 백 번 돌리는 것과 맞먹는 셈이다. 그는 지금도 하루에 7시간씩 문장 검사 규칙을 ‘깁고 더한다’. 그렇게 32년간 하나씩 더한 규칙이 5만 개에 달한다.

그는 몇 년 전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린 적 있다. “'공무원연금컨택센터'  이 이름 보고 너무 화가 났습니다. 공무원연금공단에 있는 기관인데 무슨 생각으로 이런 이름을 지었는지.... 그래서 맞춤법 검사기가 '공무원연금문의센터'나 '공무원연금정보센터'로 고치게 했습니다.” 권 교수는 말하는 도중 문법적으로 틀린 말이 있으면 바로바로 정정했다. 우리말을 바로 쓰기 위해 표준어를 구사하려 노력한다고 했다.


지난 2월 13일, 권혁철 교수가 챗GPT를 켜놓고 한국어 맞춤법 검사기와 장단점을 파악하고 있다. [전형서 기자] 
지난 2월 13일, 권혁철 교수가 챗GPT를 켜놓고 한국어 맞춤법 검사기와 장단점을 파악하고 있다. [전형서 기자] 
권혁철 교수의 연구실 서가. [전형서 기자]
권혁철 교수의 연구실 서가. [전형서 기자]

△우리말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요? 자기 문화에 대해서 가진 의식이라기보다는 인간의 본질, 본능이죠. 요즘 무분별한 외래어 사용이 너무 심각한 것 같아요. 가장 중요한 건 잘 이해하는 거니까 외래어를 쓰는 건 괜찮습니다. '딥러닝'이나 '데이터'처럼 이미 익숙해지거나, 번역할 수 없는 것도 많으니까요. 하지만 최소한 언론이나 공공기관에서는 이해할 수 있게 써야 한다는 거죠. 외래어를 쓰는 걸 더 좋다고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사대주의가 숨어 있는 거예요.

△다시 AI(인공지능) 얘기로 돌아가겠습니다. 앞으로는 태어나면서부터 AI를 사용해온 ‘AI 네이티브’세대가 나타난다고 합니다. 챗GPT, AI가 미래를 어떻게 바꿀까요?

-얼마 전 당 대표를 지낸 어느 젊은 정치인의 글씨를 보니, 예전 초등학교 2학년 수준도 안 되더군요. 저희 때 악필은 매우 큰 문제였지만, 이제 그 누구도 악필이라 해서 그 사람에 대해 나쁘게 평가하지 않습니다. 컴퓨터로 '글씨'를 쓰니까요. 이제는 '글'을 쓰는 것도 똑같이 바뀔 겁니다. 챗GPT의 도움을 받아 초안을 잡고, 그걸 가다듬어 자기 글을 만들겠죠. 그때가 되면 종이 한 장 주고 글을 써 보라고 했을 때, 전혀 못 쓸 수도 있을 거예요. 그렇지만 그 결과물은 훌륭할 수도 있을 겁니다. 챗GPT가 알려 준 걸 자기 식대로 잘 고쳤다면요.

제가 오는 금요일(2월 24일)에 챗GPT에 대해 강연하는데요. 챗GPT에게 ‘너에 대해 교사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라고 물었을 때, ‘아이에게’, ‘전문가에게 설명할 때’ 각각 완전히 다른 관점에 따라 알려주더라고요. 거기서 출발해서 제가 글을 고친다면 결과물은 훨씬 좋지 않을까요? 이런 것 외에도 기계 번역 덕분에 이뤄지는 일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겁니다. 책을 한 권 내더라도 번역해서 전 세계 모든 언어로 동시에 낼 거고, 공대에서 어지간한 미적분도 사람이 할 필요가 없겠죠. 이미 그림도 그려 주고 음악도 작곡하니까 예술사조도 바뀔 거고요. 그렇지만 기술이 발전하면 인간도 거기에 맞춰 또 다르게 변화할 거라 생각합니다. 미래가 어떻게 변할지는 아무도 모를 것 같아요.

△거부감을 가지는 사람도 많을 것 같은데요.

-미국의 한 대학교에서 총격 사건 애도문을 챗GPT로 쓴 게 들켰다고 하더군요. 전 이건 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와이프는 생각이 달라요. ‘주례사 쓸 때도 예문 보고 하고, 총장님 축사도 다른 분이 대신 써 드리지 않냐’며 뭐가 문제냐고 하더군요(권 교수 부부는 모두 우리 대학 교수다). 사회적인 합의가 필요한 얘기죠. 하지만 바람직하냐 아니냐를 떠나서, 앞으로 95%의 사람들이 그렇게 (와이프의 생각을) 따라가지 않겠어요?

한 가지 걱정되는 건, 사회의 다양성이 사라질 수 있다는 거예요. 글을 쓰더라도 문체나 표현, 용어 같은 건 개인이 다양하게 창작하는 건데, 이제는 아니라는 거잖아요. 촘스키(Noam Chomsky)는 이제부터 글을 쓰는 건 표절에 불과하다고 하더군요.

△챗GPT에게 과제를 시켰더니 A+가 나왔다는데, 그건 어떡합니까.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용해야죠. 문제를 뒤집어 버리면 됩니다. 챗GPT로 찾아낸 결과를 분석·비판해 장단점을 설명하라고 하는 식으로요. 챗GPT는 통계적으로 가장 보편적인 자료를 알려 줍니다. 가장 보편적인 계층인 30대 중반~40대 중반의 백인 남자에 맞춰져 있다는 얘기도 있어요. 그만큼 용어도 제한적이고요. 오히려 비판해서 자기 생각을 넣으면 더 좋지 않을까요? 챗GPT를 통해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도 있을 겁니다.

△AI 윤리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참 신기한 게, 윤리라는 게 0과 1처럼 딱 나눌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챗GPT 같은 심층 학습 시스템들은 윤리의 수준을 높게 지정하면 되려 답을 안 하려고 해요. 그렇다고 풀어놓으면 온갖 대답을 다 하고요. 그 한계를 정하고 AI를 가르치는 건 인간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만든, 스스로 배워서 대화하는 테이(Tay)라는 시스템이 있었는데요. 신나치주의자들이 몰려가서 가르쳤더니 ‘히틀러는 위대하다’고 한 적도 있었어요. 딜레마인 것 같습니다.

△AI가 인간을 뛰어넘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전혀요! 제가 AI를 찬양하는 사람처럼 비친 게 아닌지 모르겠어요. 전 평생 AI가 인간을 뛰어넘을 수 없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챗GPT에 ‘영혼이 있는 것 같다’고 하지만, 우습게도 고2 수준의 단순한 미적분만 있으면 되는 너무나 단순한 기술입니다. 데이터의 양이 많아서 안에 뭐라도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거죠. 양적 변화는 일으켰지만, 근본적인 질적 변화는 일으킬 수 있는 요소가 없어요. 물론 양적 변화가 질적 변화로 이어진다(컴퓨터 성능이 좋아지면 자아·자의식·영혼이 생긴다)고 믿는 분들도 있지만, 전 아닙니다. 그리고 설사 AI가 아무리 발전한다 해도, 수많은 방법이 있을 겁니다. 인간은 수많은 방법을 찾아낼 거고 극복할 거예요. 그게 당연하죠.

△인간에 대한 신뢰가 크신 것 같습니다. 질적 변화에는 어떤 게 있을까요.

-그건 모르죠. 인간의 본질을 모르니까요. 그런데 통계적인 건 아니지 않을까요. 경쟁할 때 무모하게 덤비는 게 계산적이고 평균적인 결과는 아니잖아요. 예를 들면, 질 수도 있지만 도전하는 것. 목숨을 바쳐서라도 에베레스트에 올라가는 사람들의 자아 같은 거예요. 물론 그런 것조차 AI가 흉내 낼 순 있겠죠. 하지만 인간이라면, 영혼이 있는, 과학과는 다른 뭔가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권혁철 정보컴퓨터공학부 교수 연혁

▷ 1958년 경남 울산 출생

▷ 1982년 서울대 전자계산기공학과(現 컴퓨터공학부) 졸업

▷ 1987년 서울대 전산학 박사

▷ 1990년 한국어 맞춤법 검사기 1차 발표 (16비트 IBM PC AT 기반)

▷ 1992년 (주)한글과 컴퓨터社에 기술 전수

▷2001년 법원용 시스템 개발

▷2012년 교육과정평가원·국립국어원과 교과서 검수 시스템 개발

▷2016년 한국어 맞춤법 검사기 강·약한 시스템 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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