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건물이었던 근대역사관부터
-한국 전쟁 당시 임시수도 기념관 등
-원도심서 한국 근현대사 흔적 짚기

6.25 전쟁 당시 대한민국 임시수도 역할을 수행한 부산에는 한국 근현대사의 발자취가 많이 남아있다. 그 흔적은 일제강점기 때 동양척식주식회사의 본점이 있던 곳이자 6.25전쟁 때 피란민들의 생활 터전이 됐던 부산 원도심을 중심으로 한다. 당시 부산항을 중심으로 우리나라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중심지로 번영했던 원도심은 현재의 △중구 △영도구 △동구 △서구에 해당하는 지역을 일컫는다.

<채널PNU>는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겪었던 한국의 근현대사를 느껴보기 위해 원도심에 있는 △부산근대역사관 별관 △임시수도 기념관 △임시수도 정부청사 △아미동 비석문화마을을 지난 8월 18일과 9월 16일에 방문했다.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부산근대역사관 별관

부산근대역사관 별관 1층에 있는 부산서가. 다양한 분야의 책을 자유롭게 읽을 수 있다. [하채원 기자]
부산근대역사관 별관 1층에 있는 부산서가. 다양한 분야의 책을 자유롭게 읽을 수 있다. [하채원 기자]
부산근대역사관 별관 2층 대청마루. 시민들이 책을 읽거나 공부하고 있다. [하채원 기자]
부산근대역사관 별관 2층 대청마루. 시민들이 책을 읽거나 공부하고 있다. [하채원 기자]

부산의 근현대사를 알고 싶다면 부산근대역사관을 빼놓을 수 없다. 기존 부산근대역사관은 지난 3월 복합문화공간인 ‘부산근대역사관 별관’으로 재탄생했다. 별관은 일제강점기 당시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지점으로 건립된 곳으로 역사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해방 이후에는 미국문화원으로 사용되다가 2003년부터 부산근대역사관으로 운영되며 우리나라의 아픈 근현대사를 되짚는 공간이 됐다. 인근 옛 한국은행 부산본부 건물이 ‘부산근대역사관 본관’으로 탈바꿈해 오는 12월 개관할 예정이다.

별관은 건물 그 자체로도 역사적 의미를 가진다. 1·2층 천장 등에서 건물이 지어질 당시의 모습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건물의 용도가 바뀌며 추가된 기둥에는 안내표가 붙어 있어 안내표를 읽으며 건물의 변천사를 상상하는 것도 쏠쏠한 재미다. 특히 다양한 건축 양식이 사용됐다는 점이 사람들의 흥미를 끈다. 건축 당시 활용된 △철근 콘크리트 구조 △철골 구조 △철골 철근 콘크리트 구조의 세 가지 모습을 모두 찾아볼 수 있다.

근대역사관 별관은 공부하고 휴식하기에도 좋은 공간이다. 1층은 ‘대청서가’로, 책이 주제별로 정리돼 있어 건물 내에서 자유롭게 읽을 수 있다. 한쪽에 마련된 공간에서는 특강이나 북토크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2층은 ‘대청마루’다. 계단을 올라가면 바로 이 건물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전시 공간이 보인다. 2층에도 의자와 책상이 있어 휴식을 취할 수 있다.

부산근대역사관 별관에 가고 싶다면 부산도시철도 1호선을 타고 중앙역이나 남포역에서 내려서 10분 정도 걸으면 된다. 자차를 이용한다면 인근 용두산 공원 공영주차장에 주차하면 된다.

■6.25 전쟁 당시 우리나라의 거점, 임시수도기념관

임시수도 기념관의 외관 [하채원 기자]
임시수도 기념관의 외관 [하채원 기자]
임시수도 기념관 내부의 서재 모습이다. 당시 모습대로 꾸며놓았다. 책상에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밀랍 인형이 있다. [하채원 기자]
임시수도 기념관 내부의 서재 모습이다. 당시 모습대로 꾸며놓았다. 책상에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밀랍 인형이 있다. [하채원 기자]

주택이 몰려있는 부민동의 언덕을 올라가다 보면 세월이 느껴지는 붉은 벽돌의 건물이 보인다. 언뜻 봐서는 옛 주택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임시수도기념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6.25 전쟁 이전에는 경남 도지사 관사였으나 전쟁 발발 이후 1950년 8월 18일부터 휴전한 1953년 7월 27일까지 총 1,023일 동안 부산이 임시수도 역할을 하며 대통령 관저로 사용됐다.

건물 내부로 들어서면 당시의 시대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6.25 전쟁 당시 실질적인 대한민국 정치의 최종 결정과 대외적 외교 업무가 이루어졌던 응접실, 서재 등이 당시 인테리어 거의 그대로다.

대통령 관사 건물 바로 옆에는 옛 부산고등검찰청 관사 건물인 전시관이 있다. 이곳에서는 ‘전쟁의 삶’, ‘임시수도 부산의 1,000일’을 주제로 상설 전시를 한다. 당시의 밀면집, 피란민이 살던 판잣집 모형 등을 통해 피란민의 삶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삐라 △위문엽서 △전쟁 피해 복구 포스터 등이 있어 전쟁으로 힘들었던 시대 상황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임시수도 기념관에 가고 싶다면 부산도시철도 1호선 토성역에서 하차한 후 언덕을 따라 올라가면 된다. 자차를 이용한다면 임시수도 기념관 주차장에 주차할 수 있다.

■주말 나들이하기 좋은 곳, 부산 임시수도 정부청사(현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

석당박물관의 외부 모습이다. 동아대학교 부민 캠퍼스 안에 자리 잡고 있다. [하채원 기자]
석당박물관의 외부 모습이다. 동아대학교 부민 캠퍼스 안에 자리 잡고 있다. [하채원 기자]
석당박물관 2층에는 각종 부제품이 전시되어 있다. [하채원 기자]
석당박물관 2층에는 각종 부제품이 전시되어 있다. [하채원 기자]

언덕에 있는 임시수도기념관에서 내려오면 도보 7분 거리에 부산 임시수도 정부청사가 있다. 이곳은 1926년 경상남도 도청으로 지어졌다가 6.25 전쟁이 발발한 이후 정부청사로 사용되었다. 건물 3층에는 △건물의 구조물 일부 △기와 △굴뚝 띠 △벽돌 △창호 틀 등 부산 임시수도 정부청사 건축에 직접 활용했던 부재가 전시됐다.

임시수도 정부청사는 지금은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1층과 2층에는 안중근 의사의 유묵, 동궐도 등 국보 2개와 보물 18개를 소장하고 있어, 한번 둘러본다면 알찬 하루가 될 것이다.

석당박물관에 가기 위해서는 부산도시철도 1호선을 타고 토성역 2번 출구로 나와 10분 정도 걸어가면 된다. 자차를 이용한다면 동아대학교 부민 캠퍼스 지하 주차장에 주차할 수 있다.

■피란민들의 생생한 삶, 아미동 비석문화마을

비석문화마을을 상징하는 ‘하꼬방’이다. ‘하꼬’는 일본어로 상자라는 뜻으로, 하꼬방은 피란민이 살던 상자 같은 판잣집을 부르는 말이다. [하채원 기자]
비석문화마을을 상징하는 ‘하꼬방’이다. ‘하꼬’는 일본어로 상자라는 뜻으로, 하꼬방은 피란민이 살던 상자 같은 판잣집을 부르는 말이다. [하채원 기자]
비석으로 집의 초석을 쌓은 모습이다. 왼쪽 위 비석에 ‘명치(明治) 42년 5월 27일 몰(歿)’이라고 적혀 있다. [하채원 기자]
비석으로 집의 초석을 쌓은 모습이다. 왼쪽 위 비석에 ‘명치(明治) 42년 5월 27일 몰(歿)’이라고 적혀 있다. [하채원 기자]

전쟁을 피해 부산으로 내려온 피란민들의 삶의 의지를 보고 싶다면 아미동 비석문화마을로 가면 된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부산으로 몰려온 피란민들이 광복 이후 방치되던 일본인 묘지의 비석을 사용해 집을 지은 것이 아미동 비석문화마을의 시작이다. △가스통 밑 △안심 쉼터 △놀이터 계단 △수돗가 등에서 글자가 적힌 비석을 찾을 수 있다. 비석들을 찾기 위해 보물찾기를 하는 것처럼 마을을 탐험하는 재미가 있다.

아미동 비석문화마을에는 대한민국 1세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인 최민식 작가 갤러리도 있다. 최민식 작가는 1950년대 왕성히 활동한 사진작가로, 전쟁 당시 가난한 사람들의 현실적인 모습들을 주로 카메라에 담았다. 최민식 갤러리에서는 전쟁의 시대를 살아간 시민들의 일상을 바라본 그의 따스한 시선을 느낄 수 있다. 최민식 작가가 생전에 쓰던 카메라와 육필 원고 등 30여 개의 유품 역시 만나볼 수 있다.

아미동 비석문화마을에 가려면 부산도시철도 1호선 토성역에서 하차해 8번 출구로 나온 뒤 15분 정도 걸어가면 된다. 자차를 이용한다면 아미골 공영주차장에 주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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