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한국인 강제징용 역사 '모르쇠'
-지난 7월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
-각국 "전범 행위 지우기" 비판 쇄도
-한국 정부 무능한 대응도 논란거리

일본이 자랑하는 황금의 섬인 ‘사도광산’은 누군가엔 지옥의 섬이다. 일제강점기 때 강제 동원된 한국인 1,500여 명은 고향을 떠나 외딴 섬에서 제대로 된 인간 대접을 받지 못한 채 열악한 광산에서 일해야만 했다.

27일 <채널PNU> 취재를 종합하면 사도광산은 강제 동원 역사를 덮은 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난 7월 등재됐지만, 한국 정부는 지금까지 일본 정부에 공개적인 문제 제기를 하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내외에서는 범죄 행위를 인류의 기억에서 지우려는 일본 정부의 안하무인한 태도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심층 인터뷰에 응한 우리 대학 김민수(역사교육학) 교수는 세계문화유산은 인류가 함께 ‘공유할 가치’를 우선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당시 모습이 재현되어있는 사도광산의 내부 모습 [출처: 일본 정부관광국 홈페이지 갈무리]
당시 모습이 재현되어있는 사도광산의 내부 모습 [출처: 일본 정부관광국 홈페이지 갈무리]

■황금섬 이면의 비극

사도광산은 일본 니가타현 북서쪽에 위치한 사도섬의 금광이다. 17세기 세계 최대 금 생산지로 불린 사도섬은 태평양 전쟁 이후 전쟁 물자를 조달하는 수단으로 활용됐다.

일제강점기 당시 사도광산에서 한국인이 강제 동원돼 노역한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2017년 11월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의 ‘일본 세계유산 등재 추진 사도광산의 강제동원 역사 왜곡’ 학술 세미나 자료집에 따르면 △조선인 연초 배급 명부 △조선총독부 작성지정연령자명부 등을 통해 분명한 강제동원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사도광산을 운영했던 전범기업 미쓰비시광업이 제공한 자료에도 사도광산에 한국인이 동원된 사실이 포함됐다. 1983년 니가타현의 지역 역사를 정리하는 작업 중 일본 연구자들이 확보하여 마이크로필름으로 촬영한 ‘반도 노무자 명부’로, 이 사료는 당시 한국인 노동자가 일했다는 전반적인 상황을 보여준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사도광산의 한국인 강제동원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 지난 9월 6일 열린 한일정상회담에서도 사도광산을 비롯한 역사 문제에 대한 논의는 없었다. 조선인 노동자 명단이 명확하게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본이 약속한 사도광산 노동자들을 위한 추도식은 올해부터 매년 7~8월경 사도 현지에서 개최된다고 했지만 올해 개최 일자와 장소 관련 협의는 확정되지 않은 채 여전히 진행 중인 상태다. 기시다 후미오 전 일본 총리는 앞서 지난 7월 27일 관저 홈페이지를 통해 “세계적으로 비할 데 없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라며 “진심으로 기쁘다”고 밝혔다.

한국 정부의 무능한 대처는 국내에서도 논란이다.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와 협상으로 사도광산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지만, 협상의 대가로 받아낸 ‘한국인 강제노동을 알리는 전시물 설치’가 이행되지 않고 있음에도 한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지 않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결과적으로 한국 정부가 한일 관계 개선을 중요하게 여겨서 어두운 과거를 가리려고 하는 일본 정부의 편에 선 것처럼 됐다”며 “식민지 피해를 명시하여 제국주의의 잘못된 과거를 성찰하자는 주장을 일본정부에게 해야 한다”고 전했다.

사도광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는 제3국도 비판하는 사안이다. 미국의 외교안보전문지 디폴로맷은 지난 8월 7일 기사에서 “이번 사건에서 유네스코의 평화와 협력의 정신을 되돌아봐야 한다며 역사의 왜곡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고 전했다. 사도광산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 전인 2022년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 일본 지도자들이 저지른 범죄 행위를 인류의 기억에서 지우기 위해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를 상대로 지속적인 조치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한 일본 언론의 반응은 다양하다. 지난 8월 4일 요미우리 신문은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등재가 “일본과 한국의 관계 개선 덕분에 가능해졌다”며 역사적 갈등 해결을 위한 외교적 노력을 강조했다. 지난 7월 30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사도광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와 관련해 “일본 측이 한반도 출신자의 고난의 역사에 진지하게 마주하는 자세로 임하고 있었다면, 여기까지 사태는 복잡하게 되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라며 일본 정부를 비판하기도 했다.

하시마 섬(일명: 군함도)의 전경 [출처: 일본 나가사키현 공식 관광 홈페이지 갈무리]
하시마 섬(일명: 군함도)의 전경 [출처: 일본 나가사키현 공식 관광 홈페이지 갈무리]

■역사왜곡 막는 건 “관심”

일본이 일제강점기 시절 저지른 범죄를 덮은 채 자국 산업 근대화 유산을 세계문화유산으로 포장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일명 군함도라 불리는 하시마섬이 2015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을 당시, 유네스코가 일본에게 “시설에 대한 역사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조치를 마련하라”고 권고했지만 이행되지 않고 있다.

2015년 일본은 규슈 지방의 8개 현에 있는 메이지 산업 혁명 시대 유산 23개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했는데, 그중 7개가 한국인이 강제로 징집된 공간이어서 문제가 됐다. △하시마 탄광 △나가사키조선소 △다카시마 탄광 △야하타제철소 등이 대표적이다. 2017년 민족문제연구소와 강제동원진상규명네트워크가 발행한 가이드북인 ‘일본의 메이지산업혁명 유산과 강제노동’에 따르면 관련 시설에서는 약 3만 3,400명의 한국인이 강제노동 피해를 봤다.

모든 전범국이 일본 정부처럼 역사왜곡을 통해 자국의 역사를 미화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비판을 받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제2차 세계대전 전범국인 독일은 반성적 조치를 통해 과거의 책임을 직시해 왔다. 국제군사재판인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나치의 전쟁범죄자들을 처벌했고 희생된 유대인들을 추모하기 위해 △홀로코스트 기념공원 △테러의 지정학 전시장 등을 설립해 과거를 계속해서 기억하고 있다. 베를린 시내에서는 걸림돌 표석을 발견할 수 있는데, 나치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의 거주지 앞에 걸림돌을 설치하여 이들을 기억하는 ‘걸림돌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전문가들은 세계유산이 등재될 때 인류가 함께 ‘공유할 가치’를 우선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각 나라의 자랑스러운 유산이라는 점만을 강조할 때 사도광산이나 하시마섬처럼 과거 제국주의의 잘못을 인지하지 않은 결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유네스코 세계유산과 세계기록유산에는 아름다운 유산만 등재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폭력성을 반성하고 성찰하도록 하는 유산들도 꽤 있다”며 “특히 제국주의 및 식민지 시대에 대한 성찰과 같은 가치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번 사도광산과 같은 사례를 바로잡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건 역사에 대한 ‘관심’이다. 여기서 관심이란 식민지 역사에 대해 과거의 이야기로 치부하는 것이 아니라 공감과 연대의 마음을 갖는 것이다. 김 교수는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는 건 관심에서 비롯된다”며 “관심을 두고 한국과 일본의 시민사회 교류가 진행된다면 일본 내에서도 역사 문제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이끌어질 수 있을 것”이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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