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UN아동권리협약' 발표됐지만
-여전히 4억 7천만 명의 아이들 소외돼
-학교 파괴·교육 중단으로 갈 곳 없어
-"분쟁지역 아동 위한 교육 시스템 필수"
지난 3월 18일(현지 시각) 새벽 이스라엘의 기습 공격으로 400명 이상이 사망한 가운데 어린이는 174명으로 집계됐다. 절반 가까운 사망자가 어린이인 것이다. 지금도 4억 7,300만 명 이상의 어린이가 분쟁지에서 생활하고 있다. 전 세계 어린이의 약 19%가 자신이 원치 않은 전쟁을 마주하고 있다는 뜻이다. 분쟁이 발생하면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것은 어린이의 삶이다.
27일 <채널PNU> 취재를 종합하면, 세계 분쟁지에서 어린이가 주로 밀집되는 교육시설에 대한 군사적 공격이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3월 29일 유엔 인도주의 업무 조정국(OCHA)은 가자 지구의 학교 중 67% 이상이 교육기관으로 기능하기 어려운 상태로, 이 시설은 현재 이스라엘 보안군의 군사작전에 사용되고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아동들이 이러한 분쟁으로 인한 극단적 스트레스 상황을 겪는 경우, 생애 발달 전반에 걸쳐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권리를 빼앗긴 아이들
1989년 11월 20일 발표된 ‘유엔 아동권리협약’은 아동들이 △비차별 △아동 최선의 이익·생존과 발달의 권리 △아동 의견 존중의 상황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선 △수단 내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가자지구 전쟁 등이 일상을 덮쳐, 많은 어린이가 아동권리협약의 보장에서 소외되고 있다.
어린이의 배울 권리도 제대로 보장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1월 24일 빈곤아동을 돕는 비정부기구인 세이브더칠드런에 따르면, 지난해 우크라이나에선 러시아와의 전쟁으로 인해 △학교 △유치원 △대학을 포함한 576개 교육 시설이 파괴됐다. 올해 초 휴전 협상을 맺은 가자지구의 상황 또한 열악하다. 가자지구에선 무장단체 ‘하마스’와 이스라엘 국군이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전쟁을 벌였다. 가자지구에 거주하는 4만 5,000여 명의 어린이는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되어도 학교에 갈 수 없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지난해 9월 유럽연합(EU)이 '국제 분쟁지역 교육 보호의 날' 성명을 발표하고 “학교와 교육 시설에 대한 공격이 아동의 학습권을 박탈하고 장기적인 발달에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전쟁이 남긴 상처
지속 되는 분쟁 상황은 신체적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적 건강에도 큰 상처를 남긴다. 월드비전은 2022년 발표한 ‘No Peace of Mind’ 보고서를 통해 전쟁 속에서 살아가는 어린이들은 극심한 스트레스와 불안, 우울증에 시달리며 장기적인 정신 건강 문제를 겪을 가능성이 크다고 비판했다. 이어 전쟁을 경험한 어린이들의 85% 이상이 불안과 두려움을 지속적으로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분쟁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아동들이 심각한 수준의 정서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우리 대학 김성현(유아교육) 교수는 “정서적인 피해가 심한 경우 감정을 차단하는 해리 증상이 나타나 현실 감각이 둔화하거나 공격적 행동을 보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11일 영국 가디언(The Guardian)에 의하면, 가자지구에서 진행된 연구에서 어린이들의 96%가 자신이 곧 죽을 것이라고 느끼고 있었으며 절반가량이 전쟁의 트라우마로 스스로 죽음을 원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됐다.
전쟁으로 인한 부정적 신호는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곳까지 깊숙하게 베인다. 육안으로 쉽게 확인할 수 있는 행동과 언어뿐만 아니라, 사회에 적응하는 능력이나 신체 인지 측면 또한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양대 권선주(아동심리치료학) 교수는 “전쟁의 영향은 단일한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며 변화한다”며 “처음에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보였던 아동도 시간이 지나며 갑작스럽게 심리적 고통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고 강조했다.
■분쟁지 아동 보호, 방법 없나
취약 계층, 특히 강제 이주를 겪은 아동들은 교육 기회를 박탈당할 확률이 상대적으로 더 높다. 분쟁 상황에서는 제대로 갖춰진 시설에서 교육받기 어려울 뿐더러,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공격으로 인해 원활한 학습이 이루어지기 힘들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분쟁 속 아동들을 위한 교육시스템 구축이 필수적이라고 말한다. 김 교수는 “△시간과 장소에 제약받지 않는 디지털 플랫폼 활용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을 위한 현지 언어와 다국어 지원 교육시스템 구축 △현지 교사 및 교육 인프라 지원 등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현재 다양한 비정부단체들이 분쟁지역의 어린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10일 세이브더칠드런의 국내 사업 소식에 따르면 분쟁지역 아동들의 인권 침해를 방지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국제 사회에 전달하기 위해 ‘전쟁을 멈추는 동심일기’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전쟁 지역 아동들의 실제 사례를 재구성한 교환 일기를 살펴보고, 전쟁 지역 아동들에게 교환 일기를 작성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국제구조위원회(IRC)는 가자 지구에서 가족들이 혹독한 겨울을 안전하게 지낼 수 있도록 따뜻한 의류를 제공하고, 매일 3만 리터의 식수를 1만 명에게 제공하며 깨끗한 물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있다.
하지만 이런 지원과 도움이 비단 특정 기관이나 전문가들만의 몫은 아니다. 일반인들 또한 노력을 모아 큰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 예를 들어, 후원이나 캠페인 참여를 통해 분쟁 지역 아동들을 돕는 식이다. 권 교수는 “위기에 처한 아동들을 돕는 것은 특수한 영역의 사람들만이 제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며 “일반 시민의 노력이 모이면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고, 전문 지식이나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일반 사람들의 참여 도모를 위해 참여 방법을 공유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 또한 “개인과 지역사회가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보다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며 “지역사회가 안전한 보호 공간 마련, 학대나 착취를 방지하는 감시자 역할 등을 해준다면 아동의 안전을 지키고 회복을 도울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