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학생회칙, 지난달 서면 대총서 개정
-의결권 위임 규정 새롭게 포함돼 논란
-전문가들 "회장에 결정권 집중화 우려"
-이틀 만에 생긴 규정에 졸속 개정 비판
우리 대학 총학생회 대의원의 기본권인 ‘의결권’을 총학생회장에게 위임할 수 있다는 규정이 지난달 신설됐다. 전문가들은 학생자치의 근간인 민주주의와 거리가 먼 규정이라고 진단했다. 이틀 만에 생긴 규정에 ‘졸속 개정’이라는 내부 비판도 나온다.
8일 <채널PNU>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10월 26일 낮 12시부터 27일 밤 11시59분까지 ‘총학생회칙 및 재정운용세칙 개정’을 위한 임시 대의원총회(대총)이 서면으로 진행됐다. 개정안은 우리 대학 제56대 총학생회 P:New의 이창준(지질환경과학, 22) 전 총학생회장을 비롯해 10인의 중앙운영위원(중운위원)이 발의했고 서면으로 대총에 참여한 대의원 90명 중 79명의 찬성으로 통과됐다. 참여하지 않은 대의원은 67명이다.
개정안엔 대의원과 중운위원이 부득이한 사유로 해당 회의에 참석할 수 없는 경우에 대해 총학생회장(의장·위원장)에게 의결권을 위임할 수 있다는 규정(제16조3항, 제27조1항)과 함께 위임장은 회의 개회 전까지 총학생회장(의장·위원장)에게 제출해야 한다는 조항이 포함됐다.
■“학생 자치 훼손 우려”
취재진이 만난 전문가들은 신설된 ‘의결권 위임 조항’이 학생 자치 기구의 민주적 운영을 저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상준 부산 강서구의원은 “대의민주주의 개념에서 대의원 자체가 일반 학생의 의사결정을 대신한다는 것”이라며 “이를 또다시 위임한다는 것은 대의민주주의 정신에 부합하지 않다”고 말했다.
개정안이 회의의 의장인 총학생회장에게 결정권이 과도하게 집중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우리 대학 서재권(정치외교학) 교수는 “(개정안은) 구체적으로 위임의 사안이나 범위를 정해 놓고 있지 않아 의장에게 너무나 포괄적인 권한을 줄 수 있다”며 “민주주의 가치인 투명성과 책임성을 담보할 조치가 보완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낮아지고 있는 학생사회 관심도가 이번 회칙 개정을 계기로 더욱 떨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박상준 구의원은 “의결권 위임이 대의원 참석률을 낮출 우려가 있다”며 “대의원 참석이 줄어들면 그만큼 학생이 얻을 수 있는 정보력이나 학내 의사 결정 영향력이 상실되고 낮아진 참여 효능감은 결국 (학생 사회 전반의) 무관심으로 흐르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의결권 위임 등 대의원 참석률을 흔들 수 있는 정책은 신중한 결정이 필요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이 같은 총학생회칙 개정에 대한 배경과 이유가 알려진 바가 없다는 점이다. 총학생회가 홈페이지와 SNS에 올린 개정안 발의 공고와 대총 소집 공고에는 별다른 설명이 나와 있지 않다. 취재진이 개정안 통과 직후부터 최근까지 개정을 추진한 총학생회 측에 수차례 연락했으나 총학생회는 응답하지 않았다.
■‘묻지 말고’식 발의?
학내 민주주의를 퇴색시킬 수 있는 총학생회칙 개정을 정작 ‘발의한 이들’도 ‘찬성한 이들’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다. 개정안 통과 이후 취재진이 개정안 발의자 10명 중 4명에게 개정안의 내용에 관해 묻자 모두 "내가 가지 않은 확대중앙운영위원회(확운위)에서 논의된 것 같다", "개정안 수정을 담당하지 않아 자세한 내용을 모르겠다"며 응답을 하지 못했다. 서면 대총에 의결한 학과 학생회장 A 씨도 관련 의견을 묻자 "그런 조항이 있었냐"는 반응을 보였다.
임시 대총이 정기 대총(지난 9월 19일)에 이어 또다시 ‘서면’으로 개최된 데다 충분한 공론화 기간을 거치지 못한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이번 임시 대총은 총학생회칙 개정안이 발의된 당일 곧바로 의결이 진행됐고, 사전에 관련 설명이나 논의 절차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학과 학생회장인 B 씨는 “서면 대총 의결 당시 개정안에 대해 처음 접했다”고 밝혔다. 경영대학 장서윤(경영학, 22) 부학생회장은 “확운위 내에서 (개정안에 대해) 크게 논의된 기억이 없다”며 “일부 대의원들은 내용도 안 보고 대충 찬성해서 내는 경우도 꽤나 있는 것으로 예상돼 대의원들이 책임감을 덜 가진 것도 큰 문제”라고 밝혔다.
총학생회칙 제81조 1항에 따르면 회칙개정 발의 3일 이내에 회칙 개정안의 제안 이유가 올라 왔어야 하지만, 여전히 공개되지 않은 상태다. 한편 이번 개정안엔 △학생 총투표 발의 및 의결 규정 △중앙운영위원회(중운위) 직무 대행 규정 △재정운용세칙 일부 조정이 포함됐다.
◇ 부산대학교 학생회 : 우리 대학 총학생회는 부산대학교에 학적을 두고 수료·졸업하지 않은 전체 학생을 회원으로 한다. 집행기구로 △총학생회장단이 업무를 추진하는 중앙집행위원회가 있으며 상시 의결기구엔 △중앙운영위원회(단과대학 학생회장, 동아리연합회 회장) △확대중앙운영위원회(단과대학 학생회장 및 부학생회장, 동아리연합회 부회장)가 있다. 최고 의결기구는 △대의원총회(단과대학 학생회장 및 부학생회장, 학과 학생회장, 동아리연합회 회장 및 부회장, 동아리연합회 분과장, 비례대표) △학생총회(의사결정권이 있는 회원 전체)이며 대의원총회는 학기당 1회 열린다. 특별한 사유가 없다면 해당 의결기구의 의장·위원장은 모두 총학생회장이 맡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