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통폐합률 최고, 취업률 최저
-청년들 현실적 문제로 인문학 포기
-자의 반 타의 반 상경계 복·부전공
-"인간 없는 학문은 테크닉에 불과"
-"국가·대학 나서 인문학 보호해야"
대학에서 인문학의 자리가 점점 더 좁아지고 있다. 인문학 학과 통폐합이 전국적으로 가속화하는 가운데 인문학을 선택한 학생들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상경계를 복·부전공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인문학의 위축이 단순한 학문 쇠퇴를 넘어 사회적 가치관의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고 우려한다.
1일 <채널PNU> 취재를 종합하면 다양한 통계에서 인문계열의 쇠퇴 현상이 포착된다. 학령인구 감소로 촉발된 학과 통폐합 현황은 주로 인문학과에서 발생하고 있다. 교육부가 제시한 ‘전국 일반대 학과 통폐합·신설 현황’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22년까지 4년제 대학에서 4,108개의 학과가 통폐합 또는 신설됐고, 이 중 인문·사회계열 학과 통폐합이 763건(18.5%)으로 가장 많았다. 특히 어문 학과가 집중적으로 통폐합되었으며, △영어영문학과(51개) △중국어과(36개) △일본어과(27개) 등이 사라졌다. 우리 대학도 2023년 사범대학의 독어·불어교육과가 각각 인문대학의 독어독문학과와 불어불문학과로 통폐합된 사례가 있다(<채널PNU> 2023년 3월 2일 보도).
복수전공과 부전공 현황에서도 인문학 계열은 열세를 보였다. 우리 대학 학사과에 따르면, 학생들이 가장 복수전공을 많이 하는 학과는 △경제 △경영 △반도체융합 △미디어커뮤니케이션 △국제학부(GPS) 순이다. 뿐만 아니라 부전공에서도 △경제 △미디어커뮤니케이션 △행정 △공공정책 △영어영문 순으로 취업에 유리한 계열에 지원이 집중됐다. 공공정책학부를 부전공하는 정의훈(독어독문, 20) 씨는 “공기업이나 공무원을 준비하려면 상경계열을 듣는 게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사단법인 대학교육연구소가 2022년 발간한 '2003~2022년 계열별 대학 입학정원 변화'에 따르면, 인문계열의 입학정원 감소가 가장 컸다. 2003년 대비 2022년 약 1만 명(21.6%) 줄었으며, 이 중 90%가 언어·문학계열이었다. 특히,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전환으로 학부 정원이 대학원으로 이동한 법률(-75.1%) 다음으로, 중계열 언어·문학(-36.1%)의 감소율이 높았다. 반면, 경영·경제계열의 감소율은 -17%에 그쳤다. 우리 대학에서도 계열 간 입학정원 차이가 두드러진다. 인문대학에서 가장 입학정원이 많은 영어영문(48명)과 상경계열에서 가장 많은 경영(225명)은 약 4.6배 차이를 보였다. 또한, 경제(86명)와 무역(84명)도 영어영문보다 약 1.7배 많았다.
■갈 곳 잃은 인문학도들
학생들이 인문학과를 외면하는 이유는 취업난이다. 실제로 지난해 교육부와 한국교육개발원이 발표한 ‘2023년 고등교육기관 졸업자 취업통계조사’에 따르면 계열별 취업률 중 인문계열의 취업률이 가장 낮았다. 의약계열(82.1%)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탔으며 공학계열(71.9%), 교육계열(69.5%), 사회계열(69.4%), 예체능계열(67.2%), 자연계열(66.5%)이 뒤를 이었다. 인문계열은 방송통신대학·사이버대학·원격대학·기술대학 등을 제외하면 58.7%로 60%에도 미치지 못했다.
거점국립대학이자 종합대학인 우리 대학의 인문계열은 그나마 취업률이 양호한 편이지만 학생들 사이에선 갈증이 여전하다. 대학알리미에 따르면, 2022년 우리 대학 인문대학의 취업률은 △중어중문(64.3%) △불어불문(63.2%) △사학(60%) △노어노문(58.1%) △독어독문(51.4%) △언어정보(50%) △국어국문(45.2%) △한문(41.7%) △영어영문(40%) △일어일문(38.5%) △고고(37.5%) △철학(33.3%) 등으로 집계됐다. 상경계의 취업률 △관광컨벤션(64.7%) △경영(58%) △무역(57%) △경제(51.2%)에 비교했을 때 준수한 수치다. 하지만 여전히 학생들 사이에서는 인문학이 여전히 ‘취업에 불리하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우리 대학 재학생 홍승택(철학) 씨는 “인문대생은 공무원 시험이나 복·부전 둘 중 하나라도 하지 않으면 취업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인문학 전공을 선택하지 못하게 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만연하다. 정 씨는 “(인문학은) 교양으로 듣기는 좋지만, 전공으로 살리려면 오래 공부해야 하고 사회에서 인문학이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우리 대학 인문대학에서 경영학과로 전과한 B 씨는 “인문대학에 진학했다고 하면 주위에서 어디에 취업하는지 많이 묻는다”며 “크게 좋은 반응은 아니었다”고 답했다. 이를 두고 우리 대학 윤민종(교육학) 교수는 “사회 구조상 학생들이 (인문학 대신) 상경계로 쏠리는 것은 자본주의에서 두드러지는 당연한 현상이고, 꼭 나쁘다고는 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자신이 선택한 전공조차 지키기 어려운 현실에 인문학도들은 서러움을 토했다. 설령 인문학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나 학업 등에 정진하려 해도, 취업률과 현실적인 여건 앞에서 △복수전공 △부전공 △전과 제도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 대학 재학생 A(국문학, 24) 씨는 “듣고 싶은 전공 수업이 많아 심화전공을 하고 있지만, 전공을 살려 취업하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홍 씨는 “고등학생 때 윤리교육과를 희망해 철학과에 진학했으나 생각보다 내용이 추상적이고 취업 문제도 있어 사회복지학을 부전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B 씨도 “경영학과에서 관련 공모전이나 대외 활동의 기회가 (전과하기 전보다) 많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위기 뒤엔 정책적 무관심
인문학 쇠퇴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지만, 정부는 공학과 상경계에만 투자를 늘리고 있어 ‘빈부격차’를 심화하고 있단 지적이 나온다. 2016년 교육부는 ‘산업연계 교육활성화 선도대학(PRIME)’ 사업을 통해 이공계·의학계열 정원을 늘리고, 인문·예술계열 정원을 감축하도록 유도했다. 사업에 선정된 대학은 막대한 정부 지원금을 받을 수 있기에, 많은 대학이 자연스럽게 인문대 정원을 줄이거나 학과 통폐합을 감행했다.
정부의 연구개발(R&D) 지원 예산에서도 인문·사회학 분야는 외면 당했다. 2023년 정부 R&D 예산 30조 6,574억 원 중 인문·사회학 연구 예산은 약 3,000억 원(1.2%) 수준에 불과했다. 이는 영국, 미국 등 국가가 정부 학문 연구 지원 예산의 10%에 가까운 규모를 인문·사회 분야에 할당하는 것과 큰 차이를 보인다. 이에 대해 윤 교수는 “국가와 대학이 경제 발전과 직결되는 학문만을 중요시하면서, 돈이 되지 않는 학문은 필요 없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보내고 있다”며 “대학이 학문적 호기심을 길러주는 공간이 아닌 취업 준비소로 변질되면서 시민으로서의 기본 소양과 주체적인 사고 능력을 잃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정부가 주도하고 있는 무전공(전공 자율선택제) 선발 확대 정책도 인문학도가 감소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있다. 무전공 제도는 전공을 선택하지 않고 입학해 1학년 때 여러 전공 수업을 듣고 2학년 때 자유롭게 본인의 전공을 선택하는 방식이다. 앞서 우리 대학은 자율전공학부 유형Ⅰ(완전한 자율선택)과 유형Ⅱ(일정 범위 내 선택)를 도입해 올해 유형Ⅱ에 해당하는 △공학자율전공 △나노자율전공 △글로벌자유전공학부 신입생 139명이 학부대학에 입학했다(<채널PNU> 2025년 3월 3일 보도). 우리 대학 김승룡(한문학) 교수는 “무전공제도는 학생의 자율적 선택을 제도적으로 보장하지만, 결국 취업에 유리한 전공으로의 쏠림 현상을 강화하고 인문계열 전공자 감소에 영향을 줄 수 있다”라며 “이는 기존의 전공 불균형 실상을 뒤늦게 제도화한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인문학의 위기, 벗어나려면
인문학의 쇠퇴는 단순한 학문적 문제를 넘어 사회적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상황이 지속될 경우 사회의 도덕적 기준과 가치 판단 능력이 약화될 수 있으며, 인간 중심의 사고가 사라지고 효율과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회로 변질될 수 있다고 전했다. 김 교수는 “인간이 부재한 학문은 결국 테크닉으로 전락할 뿐”이라며 “인문학의 위축은 그저 하나의 학문 분야의 위축이 아니라, 사회가 공존하기 위해 반드시 있어야 할 공존의 축이 무너지는 것”이라 말했다.
교육부는 인문학 쇠퇴를 막기 위해 2016년부터 2018년까지 19개 대학에서 인문계열 집중 지원 프로그램인 '코어사업(CORE·대학 인문역량강화사업)'을 추진했다. 이는 정부가 처음으로 시행한 인문학 교육 지원 사업으로, △인문학 보호 및 육성 △사회적 수요에 맞는 교육프로그램 개발 △진로 선택 기회 확대를 목표로 했다. 또한 2023년부터 올해까지,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은 '인문사회 융합인재 양성사업'을 통해 학내 학과 간, 대학 간 경계를 허물고 인문사회 기반의 융합형 인재를 양성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전문가들은 단순히 인문학 전공자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인문학이 실용 학문과 접점을 찾으며 독자적 가치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 교수는 “인문학은 독자적인 가치를 지키면서도 타 학문과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지평을 열어야 한다”라며 “대학은 인문학 전공자에게도 타 학문 분야의 기본 소양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문학의 위상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국가와 대학이 나서서 보호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의 지적이다. 김 교수는 “실용적 가치를 강의하는 학문 분야 모두가 자기 학문에 앞서 인간과 인문의 가치를 우선 제시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윤 교수 또한 “학생들이 더 선호하는 학과에 수업, 강사, 인센티브를 확대하는 건 자연스러운 흐름이지만 그 과정에서 기초 학문이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며 “기초 학문은 그 자체로 지켜지고 보호받아야 하며, 균형 있는 학문 생태계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