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마항쟁 기념 위해 1985년부터
-코로나 팬데믹에도 열렸던 시월제
-2023년부터 총학생회 열지 않아
-"자랑스러운 역사·정체성 되새겨야"
우리 대학 선배들의 자랑스러운 역사인 부마민주항쟁을 기념하는 ‘시월제’가 사라져가고 있다. 최근 3년 간 시월제라는 이름의 행사는 열리지 않고 있으며 부마민주항쟁을 기념하는 행사도 2년째 열리지 않고 있다.
1일 <채널PNU> 취재를 종합하면 올해 제57대 총학 ‘Around Us’는 시월제를 포함해 부마민주항쟁(부마항쟁)을 별도로 기념하지 않는다. 올해 총학은 지난 9월 17일과 18일 대학원혁신실이 주최하는 ‘대학생·대학원생 커리어 페어’의 초청 가요제 진행을 맡았지만(<채널PNU> 2025년 9월 1일 보도), 해당 행사에 부마항쟁 기념행사는 포함되지 않았다. 올해 대학본부 차원에서 주도하는 학내 부마항쟁 기념행사도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1985년 시작된 가을 행사인 시월제는 1979년 10월 16일 우리 대학에서 시작된 부마항쟁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시작됐다. 유신 정권을 무너뜨린 항쟁의 시발점이자 민주화 운동의 역사적 장소인 우리 대학에서 총학생회(총학) 주도로 매년 10월마다 열렸다. 주로 학생을 대상으로 약 40년간 이어진 시월제는 시대 흐름에 따라 형식은 바뀌었어도 부마항쟁을 기념한다는 본질은 유지됐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형식을 달리한 시월제는 2022년을 마지막으로 자취를 감췄다.
■부마항쟁을 기리며 시작됐지만
시월제의 탄생은 민주화 이후 학생자치 부활의 신호탄과 같았다. 당시 부대신문 보도를 종합하면, 1985년 이전까지는 신군부의 통제로 총학이 간선제로 운영되며 사실상 학생 자치는 멈춘 상태였다. 그러나 1984년 학도호국단 해체와 직선제 요구가 확산되며, 1985년 직선제로 구성된 총학이 출범해 시월제를 열었다. 이전에도 매년 가을이면 학과나 동아리별로 1년 간의 성과를 보여주는 ‘가을학술제’가 열렸는데, 당시 총학은 여기에 부마항쟁을 기념하는 의미를 더해 시월제의 전신인 ‘시월학술제’를 처음 열었다. 이때를 기점으로 매년 총학은 시월제를 주최하며 부마항쟁의 의미를 학생들과 되새겼다.
초창기 시월제는 ‘시월학술제’라는 이름에 걸맞게 사회 비판과 학술적 색이 강했다. △거리 만화 전시 △동아리 공연 △캠퍼스 행진 및 캠프파이어 등 축제 프로그램도 있었지만, △교수·지역 언론인 특강 △학술토론회 등이 행사의 주를 이뤘다. 또한 △군사 정권을 비판하는 내용의 △학생 자체 뮤지컬 △대통령 모의 선거 등을 진행하며 학생들은 정치·사회 문제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였다(<부대신문> 1986년 12월 4일, 1987년 11월 9일 보도). 1987년 우리 대학 부총학생회장을 지낸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김종기(철학 81, 졸업) 상임이사는 “당시에는 학내에도 경찰이 상주하며 무대를 불온하다고 판단하면 바로 진입하는 등 시월제는 늘 긴장감 속에서 열렸다”며 “그럼에도 매년 열려 민주주의와 사회 문제에 대한 학생들이 관심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비슷한 분위기가 1990년대까지 이어져 오다 2000년대 들어선 시월제에는 축제의 분위기가 더해졌다. 2000년대 총학은 학생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체전(체육대회)와 동아리 공연 비중을 늘리고 예산을 투입해 초청 가수 공연도 준비했다. 당시 학생 참여도가 낮아 “학생들이 시월제를 모두가 함께하는 자리로 인식해야 부마항쟁의 정신을 계승하고 사회문제를 조명할 수 있는 시월제가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이라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부대신문 1999년 10월 26일 보도).
참여도 저하 속에서도 총학은 시월제 내에 부마항쟁을 기리는 일정을 꾸준히 포함하며 시월제의 명맥을 이어왔다. 2000년 10월 10일 열린 시월제에는 △매향리 대책위원회 전만규 위원장의 매향리 폭격 사건 강연 △썰물·소리터·UCDC의 동아리 공연 △통일 가요제 △민중가요 그룹 ‘우리나라’의 초청 가요제가 진행되며 시월제의 정신에 축제가 자연스레 스며든 모습을 보였다(부대신문 2000년 10월 17일 보도).
■코로나에도 열린 시월제
대면 활동이 힘들던 코로나 팬데믹에도 부마항쟁을 기념하는 시월제는 이어졌다. 2020년 당시 제52대 총학 ‘투게더스(To Gather Us)’는 온라인을 적극 활용해 ‘부마항쟁 이후 41년이 지난 지금의 부산대학교’를 주제로 백일장과 사진전을 열었으며 부마항쟁 퀴즈 대회인 ‘시월고사’를 열어 의미를 되새겼다(부대신문 2020년 11월 2일 보도).
2022년에도 비록 방역 수칙과 ‘이태원 참사 애도 기간’ 속에서 소규모로 열렸지만, 시월제의 의미는 사라지지 않았다. 당시 총학은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과 협력하여 △퀴즈 프로그램 ‘역사를 잡아라’ △부마길 탐방 △영화 상영을 운영했다(<채널PNU> 2022년 10월 27일 보도). 코로나에 이태원 참사까지 겹쳐 초청 가수 공연은 없었지만, 축제 형태의 부스와 부마 관련 행사를 적절히 운영해 학생들의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었다.
시월제가 자취를 감추기 시작한 건 2023년이다. 당시 대학본부는 부마항쟁 44주년을 맞아 부마항쟁이 시작된 10월 16일을 개교기념일 이후의 유일한 학교 기념일로 지정했다. 또한 ‘부마항쟁 기념 주간’을 운영하며 10.16 부마항쟁 스토리텔링 콘서트와 △부산대학교 역사 탐방 이벤트(10.16의 길) △부마항쟁 역사 자료 전시 △부마항쟁 기념 학생 작품 공모전을 열었다. 특히 우리 대학 넉넉한 터(넉터)를 중심으로 주변부대 일대에 ‘시월광장’이라는 명칭을 부여하는 ‘시월광장 명명식’을 열고 안내판을 설치했다(<채널PNU> 2023년 10월 6일 보도). 이 과정에서 제55대 총학생회 ‘Shall:We’는 시월광장 일대에서 가을 축제 ‘쉼표’를 진행해 △가수 초청 공연 △동아리 공연 △푸드트럭 등을 열었지만, 별도 추모 행사는 없었다.
이후 지난해 제56대 총학 ‘P:New’는 예산 문제로 시월제를 개최하지 않았다(<채널PNU> 2024년 10월 4일 보도). 당시 이 모 총학생회장은 <채널PNU>와의 인터뷰에서 “시월제 외의 부마항쟁을 기념하는 행사를 총학생회 차원에서 조율 중”이라고 답했으나, 이 역시도 이뤄지지 않은 채로 임기가 마무리됐다.
올해 총학은 공약으로 ‘시월제 추도식’을 내세웠지만 이마저도 무산됐다. 대학원혁신실이 주최하고 총학 등이 공동 주관한 ‘진로 IN, 미래 ON : 대학생·대학원생 커리어 페어’의 초청 가요제에 관련 예산이 사용되면서다(<채널PNU> 2025년 9월 1일 보도). 이에 대해 강준서(생명과학, 22) 부총학생회장은 “올해 10월은 추석 연휴와 시험 기간이 겹치는 등 시간적 여유가 부족했다”며 ”학생들이 더욱 관심 가질 만한 커리어페어와 초청 가요제 기획에 집중했다“고 밝혔다.
■시월제 되살려야
시월제가 사라져가는 상황을 두고 아쉬움과 함께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단순한 가을 축제를 넘어, 시월제는 우리 대학 민주화 정체성과 공동체 정신을 상징하는 행사였던 만큼 총학이 이를 더는 개최하지 않는 현 상황이 학생자치의 실종이라는 비판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정대성(역사교육) 교수는 “시월제는 단순히 10월에 열린다는 의미를 넘어선다”며 “한국 민주화 운동사의 한 획을 그은 부마항쟁을 기념하는 의미고, 그 시작이 우리 대학이었다는 것은 학내 구성원 모두에게 큰 자부심이자 중요한 의미”라고 강조했다. 김 이사는 “시월제의 본래 목적이 퇴색된다면 부마항쟁의 시발점이라는 부산대학교의 상징성도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시월제가 열리지 않는 현실은 부마항쟁에 대한 학내 구성원의 무관심으로 이어질 수 있단 우려도 나온다. 실제로 2023년 우리 대학 교원·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교무과의 설문조사에서 전체 응답자 중 47.54%(2,080명)가 시월제의 의미를 모른다고 답한 바 있다(<채널PNU> 2023년 9월 7일 보도). 김 이사는 “초청 가수 공연과 같은 문화 행사도 좋은 기획이지만, 그와 함께 역사와 대학생의 정체성을 되새겨보는 것도 병행되는 시월제가 되기 바란다”며 “이 역할을 총학생회가 주도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축제 위주의 기존 방식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과거에 비해 다양해진 부스 운영과 초청 가수 공연 등으로 인해 시월제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 총학 수준에서 예산과 행사 준비 기간을 확보하는 것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시월제가 열리지 않는 상황이 대동제 때 너무 많은 예산이 투입된 것과도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며 “학교 측의 적극적인 지원이 보태진다면 시월제의 의미를 풍성하게 살릴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우리 대학은 시월제가 학생자치의 영역이라며 선을 그으며 총학이 시월제를 추진한다면 지원하겠다는 입장이다. 학생과 학생복지팀은 “학생과는 총학을 지원하는 역할만 한다”며 “당해 총학이 시월제를 연다고 결정하면 예산 등 지원할 수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