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스타 강사 '큰별쌤' 최태성 씨
-'부마 문화제' 강연자로 무대에 올라
-”부마항쟁 기억하는 건 시민의 의무"
-"부산에 기념관조차 없어 안타까워"

“1979년 10월 16일의 부마민주항쟁을 기억하는 것에서부터 대한민국 민주공화국 시민으로서의 책임이 시작됩니다.” 최태성 강사는 우리가 민주주의 체제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의 출발선이 부마민주항쟁(부마항쟁)이며, 이를 기억하는 것이 시민의 의무라고 강조했다.

지난 9월 20일 부산 중구 부산영화체험박물관에서 열린 ‘부마문화제: 청년 렉쳐콘서트’에 강연자로 참석한 최태성 강사.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제공]
지난 9월 20일 부산 중구 부산영화체험박물관에서 열린 ‘부마문화제: 청년 렉쳐콘서트’에 강연자로 참석한 최태성 강사.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제공]
지난 9월 20일에 부산 중구 부산영화체험박물관에서 열린 ‘부마문화제: 청년 렉쳐콘서트’의 최태성 강사 강연을 시민들이 듣고 있다.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제공]
지난 9월 20일에 부산 중구 부산영화체험박물관에서 열린 ‘부마문화제: 청년 렉쳐콘서트’의 최태성 강사 강연을 시민들이 듣고 있다.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제공]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재단)은 부마항쟁 46주년을 맞아 지난 9월 20일 부산영화체험박물관(부산 중구)에서 ‘부마문화제: 청년 렉쳐 콘서트’를 열었다. 재단은 5·18 민주화운동 등에 비해 비교적 인지도가 낮은 부마항쟁의 역사와 가치를, 특히 젊은 세대에게 전하고자 이번 행사를 콘서트 형식으로 기획했다. 강단에는 ‘큰별쌤’이라 불리며 여러 방송 활동과 교과서 집필까지 하며 한국사 스타 강사로 자리 잡은 최태성 강사가 섰다. 앞선 1부에서는 지역 밴드 ‘루즈네그라’가 유신시대 금지곡을 재해석한 공연을 선보였다.

최 강사는 부마민주항쟁이 한국 민주화운동의 실질적 출발점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여전히 1987년 체제 속에 살고 있다”며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선출할 수 있는 지금의 일상이 1987년 6월 항쟁의 결과이며, 그 시작은 1979년 부마항쟁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5·18 민주화운동은 부마항쟁에서 출발해 7개월 뒤 광주로 이어진 흐름이며, 6월 항쟁 역시 그 시작은 부산이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1979년 10월 16일 우리 대학 학생들의 시위를 시작으로 약 7만 명의 시민이 남포동 일대에서 대규모 시위에 나섰고, 이는 경남 마산으로 확산됐다. 같은 해 10월 26일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 의해 사망하는 10·26 사태로 이어졌다.

최 강사는 “만약 10·26 사태가 없었다면, 5·18 민주화운동은 광주가 아닌 부산에서 벌어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김재규의 항소이유서에도 유사한 정황이 담겨 있었다는 설명이다. 그는 “5·18과 부마항쟁은 분리된 사건이 아니다. 단지 7개월의 시간 차이가 있을 뿐이고, 그 사이에 10·26이라는 정치적 변수만 있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는 부마항쟁에 대한 낮은 사회적 인지도를 안타까워하며 “정작 (부마항쟁이 일어난) 부산에는 부마항쟁을 기억할 수 있는 기념관조차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광주 5.18 민주화운동 기념관처럼 부산에도 부마항쟁 기념관이 있을 줄 알았는데 없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다”며 “예산을 확보해서라도 부마항쟁의 성지인 부산대나 남포동에 반드시 기념공간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민주화운동의 출발점인 부산이 마치 관전자처럼 남아 있는 현실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강연은 부산 시민들에게 역사적 책임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부산 동래구에서 왔다고 밝힌 한 초등학생은 “부마항쟁이 시험에 잘 나오지 않아 몰랐는데, 오늘 강연을 통해 기념관조차 없다는 것을 알게 돼 부산 시민으로서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콘서트를 주최한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은 2018년 설립돼 지금까지 부마항쟁의 역사적 가치 확산을 위해 다양한 사업을 이어오고 있다. 재단 관계자는 “이번 행사는 오프라인으로 열린 첫 콘서트 형식의 기획”이라며 “앞으로도 다양한 사업과 학술 활동을 통해 부마항쟁이 한국 민주화운동의 시발점이라는 인식을 널리 확산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앞으로 5년, 길게는 10년 동안 부마항쟁의 역사적 의미를 중심에 둔 사업을 지속적으로 펼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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