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대 인권위원회 이훈 위원장 인터뷰
-"공동체의 문제라는 인식으로 여론 수렴"
-"작은 성공부터 이루면 기숙사도 변화할 것"
해외에서는 성 중립 시설에 대한 논의가 오랫동안 이뤄져 이미 시설이 마련된 곳이 많다. 프린스턴 대학은 2017년부터 기숙사 배정에 사용되는 모든 방들을 '성중립(Gender Neutral)'이 가능하도록 지정했다. '성중립' 기숙사는 2명 또는 그 이상의 학생들이 기숙사를 신청할 때 성별에 관계없이 선정할 수 있으며, 이는 남녀뿐만 아니라 트렌스젠더 혹은 성별을 정하지 않은 '젠더넌컴포밍(Gender Nonconforming)' 학생들도 포함한다. 같은 해, 국립대만대학교에서 성 중립 화장실을 설치했고 일본 나고야 대학교에서도 ‘모두의 화장실(誰でもトイレ)’이라는 이름의 성 중립 화장실을 설치했다. 해외 대학에서는 찾으려면 찾을 수 있는 게 성 중립 시설이다. 트랜스젠더 학생에 대한 입학과 관련해서도 허용 범위가 넓거나, 아예 성별 기재란을 두지 않고 입학을 관리하는 곳도 있다.
해외 사례로만 존재할 줄 알았던 성 중립 시설이 한국의 대학에도 생겨났다. 지난 3월 16일, 준공식을 가지고 성공회대학교가 처음으로 '모두의 화장실' 설립에 성공했다. ‘기계적 중립이 아닌 정말로 약자의 편에 서는 기구’를 생각한다는 성공회대학교 제6대 인권위원회 이훈 위원장은 2021년 총학생회 비대위원장을 거쳐 인권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 이 위원장은 모두의 화장실 준공의 발자취에 서 있다. ‘채널PNU’는 지난 3월 15일 화상 회의 줌을 통해 위원장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모두의 화장실’은 어떤 화장실인가.
-모두의 화장실은 성중립 화장실보다는 큰 개념이다. 휠체어로 이동이 불편한 장애인들이나, 아동과 양육자가 쓰기 쉬울 수 있도록 넓은 의미에서 설계됐다. 기존에 있는 화장실은 장애인들이 이용하기 불편하고, 양육자를 전혀 배려하지 않고 있다.
△어떤 과정을 거쳐 준공했나.
-이야기가 나온 건 2016년부터이다. 성공회 대학교 안에 성소수자 모임 '레인'이라는 단체가 성 중립 화장실이 필요하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꺼냈다. 본격적인 담론이 시작된 건 총학생회 출범 이후부터이다. 2017년 '바다'라는 총학생회가 성 중립 화장실을 학교 안에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세웠고 이후 당선됐다. 그런데 막상 만들려고 하다보니, 성별을 넘어서서 약자 모두를 포함하는 화장실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학내 여러 단체들이 힘을 모아 2021년부터 설치가 현실화 되었다. 작년 5월 17일에 중앙운영위원회가 열렸는데 '모두의 화장실 설치를 위한 건'이 발의가 되었고, 5월 24일 전체 학생 대표자 회의에서 '모두의 화장실 설치를 위한 활동 예산 건'이 올라왔다. 학내 구성원 중 누군가가 불편함을 겪고 있다면 반드시 총학생회가 힘을 써야 한다고 생각해 대학본부와도 회의를 반복한 결과 화장실 준공에 이르렀다.
△모두의 화장실이란 개념이 생소해서 합의점을 찾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물론 우리도 화장실 준공을 위해 교내에서도 기사가 나가고 ‘백래시’가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우리 학교 자체의 분위기가 진보적이고 인권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반대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금액적인 부분을 조율하느라 시간이 걸렸지 학내 구성원들 반응은 괜찮았다.
-여론을 수렴하기 위해 학내 구성원들의 의견을 묻는 설문조사를 진행했고, 부스를 열고 성소수자가 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스토링텔링을 많이 전했다. 사람이 평균적으로 하루에 4~20번 정도 화장실 이용하는데, 성소수자들은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고 10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참았다 해결한다고 화제를 꺼냈다. 이건 아주 일상의 문제이고, 현재의 화장실은 뭔가 부족한 게 아닌가 하는 이야기로 돌렸다. 화장실의 문제를 넘어서서, "이건 공동체의 문제", "나의 아픔이 너의 아픔", "내 주변에서 친구가, 혹은 지인이 화장실을 못 가고 발을 동동 굴리고 있는데 ‘네 화장실 네가 알아서 해야지’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등 개인적인 차원으로 돌려보려고 했다.
-성소수자, 장애인, 아동을 양육하는 학생들은 소수지만 언제나 존재하고 우리 근처에 동료로 있다. 고작 화장실을 가지 못하고 쩔쩔매고 있는 상황을 우리가 보면 아무런 감정이 없을 것인가? 분명히 무력감이 있을 것이다. 트랜스잰더도 우리 학교의 구성원이기에 우리가 방치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부산대학교에는 인권위원회가 없어 학내 ‘인권위원회’ 활동도 궁금하다.
-‘성공회대학교 제6대 인권위원회’는 성공회대학교의 총학생회칙에서 보장하는 특별기구이다. 독립기구라 총학 산하 기구는 아니다. 학내 인권의 증진을 목적으로 하는 기구로, 중앙운영위원회와 전체학생대표자회의의 구성원이기도 하다. 학내에선 유일하게 성폭행 사안에 대해 조사권을 가졌으며 당연히 사건 의뢰시에 철저한 비밀유지의 의무를 가진다.
-제1대 인권위원회 출범은 7년 전인 2016년이다. 원래는 총여학생회가 있었는데, 총'여'학생회다보니까 여성 이슈를 제외하고는 다루기가 어려웠다. 장애가 있는 학우들의 이야기나, 성소수자 문제 같은 것들 말이다. 그래서 자발적으로 인권위원회로 변하게 되었다.
-조사권, 비밀유지의 의무가 있기 때문에 학내 노동자, 채식인, 장애인, 여성, 성소수자와 연대하며 크고 작은 일들을 많이 겪었다. 그래서 학내에서는 꽤나 존재감이 큰 조직이고 학교 본부도 부담스러워하는 기구로 성장했다. 여러 대학의 인권위원회들 사이에서도 유명하다.
△앞으로 화장실을 넘어서 성소수자들을 위한 기숙사 설립은 생각이 없는가. 이 외에 생각하는 활동이나 대학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게 있을까.
-작은 승리부터 이뤄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화장실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기숙사에 대해서도 반드시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남녀로 구분되지 않고 성소수자를 포함해서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한 건 사실이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