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월동은 어떤 곳?
-일제시대 조성된 공창에서 출발
-동양 최대 성매매 집결지로 불려
-학교·주택 인근서 착취된 여성들

동네 곳곳에 ‘철거 예정’이라는 빨간 글씨가 보인다. 대부분의 건물은 문을 닫은 채 커튼이 굳게 쳐져 있고 지나다니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대표 관광지로 북적이는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 불과 도보 10분 거리에 있는 이곳은 한때 ‘동양 최대 규모의 집창촌’으로 불리던 ‘완월동’이다. ‘청소년 통행금지구역’ 푯말이 즐비한 완월동은 최근 재개발 승인에 일부 건물이 철거를 앞두고 있다. 

지난 8월 11일 <채널PNU>는 철거를 앞둔 완월동을 찾았다. 완월동에는 낡고 오래된 상가가 가득했다. 시끄럽게 느껴지는 철거 예정 글씨와는 달리 지나치게 거리는 한적해 되레 음산했다. 

더 이상 영업을 하지 않는 성매매 업소, 건물 외벽에 철거 예정 글씨가 적혀있다. [최윤희 기자]
더 이상 영업을 하지 않는 성매매 업소, 건물 외벽에 철거 예정 글씨가 적혀있다. [최윤희 기자]
​ 이제는 운영하지 않는 성매매 업소, 일본어로 된 간판을 볼 수 있다. [최윤희 기자]
​ 이제는 운영하지 않는 성매매 업소, 일본어로 된 간판을 볼 수 있다. [최윤희 기자]

■부산 마지막 홍등가

‘달을 감상하는 동네’라는 뜻을 가진 완월동(玩月洞)의 밤이 시작된 건 일제강점기부터다. 1876년 강화도 조약 체결 이후 부산항에 일본인 집단 거류지가 형성됐고, 이를 중심으로 점차 유곽이 성장한 것이다. 1900년대 중후반부터 ‘녹정유곽’이라는 명칭의 공창으로 영업했고, 일제강점기 내내 일본인 손님을 위주로 번영했다.

해방 후에도 완월동의 성매매는 해방되지 못했다. 오히려 국내 성매매의 확산으로 1970년대에는 '국내 최대 규모의 성매매 집결지'로 자리 잡았다. 당시 미등록 포함 약 2,000명의 여성이 완월동에 거주하며 성매매 일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1982년 완월동의 행정동 명칭을 충무동으로 바꿨지만 성매매 집결지로서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1995년 개정된 윤락 행위 등 방지법에도 성매매를 단속할 수는 없었다. IMF 외환위기를 맞은 후에도 완월동의 성매매 종사자 수는 꾸준히 증가해 2000년 초까지도 완월동의 홍등가는 밤새 번쩍였다.

2004년 이후 형사 처벌이 강화된 ‘성매매 단속특별법’이 시행되며 완월동은 겉으로는 폐지를 앞두고 있다. 현재 중심부는 지난 7월 시의 초고층 주상복합건물의 건축 승인 이후 더 썰렁한 상태다. 거리엔 폐건물이 즐비해 성매매 업소가 운영 중인지도 구분하기 힘든 수준이다. 주상복합건물의 건축이 시작되면 중심가의 폐건물은 철거가 진행될 예정이나 외곽 성매매 업소들의 구체적인 철거 계획은 알려진 바 없다.

■“암암리 운영중”

<채널PNU>가 직접 방문한 완월동의 현재 모습은 철거를 준비하는 건물 사이에서도 운영의 낌새가 보였다. 한낮이었지만 성매매 알선업자들의 까만 승용차도 곳곳에 주차돼 있었다. 동행한 여성인권지원센터 ‘살림’의 변정희 대표는 “폐건물로 보이지만 여전히 24개 정도의 업소가 암암리에 운영 중인 것으로 확인된다”고 말했다. 거리를 취재하는 도중에 옆으로 승용차 한 대가 조용히 지나가자 “저 안에 성매매 업소 관계자가 타고 있다”며 "외부인이 성매매 집결지 지역에 들어오면 상당히 경계한다"고 덧붙였다.

스산한 거리에선 과거 ‘최대 규모 집창촌’이라는 ‘명성’ 또한 찾아볼 수 있었다. 건물의 규모가 과거 완월동이 한창 성행하던 시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서울의 영등포역 일대나 부산의 범전동 300번지와 같은 대부분의 성매매 집결지는 보통 1~2층의 단층 건물이 주를 이룬다. 반면 완월동에는 4~5층이 넘는 건물이 여러 채 세워져 있었고, 80년대 성황으로 기존 층수에서 더 증축한 건물도 즐비했다. 변 대표는 “한국의 어느 성매매 집결지도 4~5층이 넘는 건물 여러 채에서 성매매가 운영되는 곳은 없었다”고 전했다.

과거 일본인들이 향유한 문화도 그대로 남아있었다. 일본식 적산가옥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고, 일본 글자가 적힌 간판이 있는 건물도 있었다. 일본식 유곽이 형성되었을 때의 길과 건물 구조를 100년이 넘게 지난 아직까지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건물의 1층에서는 ‘유리창’과 ‘나까이’(성매매 업소의 매상 관리 등을 맡는 담당자)를 위한 의자를 찾아볼 수 있었다.

4~5층이 넘는 성매매 업소 건물, 기존 건물에서 증축을 한 모습이다. [최윤희 기자]
4~5층이 넘는 성매매 업소 건물, 기존 건물에서 증축을 한 모습이다. [최윤희 기자]

■완월동 여성들

거리에서 나와 변 대표의 협조를 통해 ‘완월 아카이브’에 전시된 성착취 여성들의 실상도 볼 수 있었다. 그들의 주거지는 녹슨 창살이 설치된 창문과 곰팡이 핀 벽으로 둘러싸인 협소한 공간이었다. 그곳에서 착취 당한 여성들은 기본적 건강관리도 받지 못한 채 사회적 위협에 노출된 상태에 놓여 있었다. 변 대표는 “3일 전에도 밤새 구매자들에게 시달리던 여성 한 분이 자살하셨다”고 전했다.

살림에 따르면 여전히 완월동엔 최소 60여 명의 여성들이 성매매 업소에 거주하며 성착취를 당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변 대표는 전국적으로도 성매매 집결지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 상황에 대해 '국가가 용인한 장소'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성매매 업소가 운영되려면 지자체의 공무원을 비롯해 사회가 묵인해야 가능하단 것이다. 변 대표는 “여성들의 삶을 고려하지 않으면 이러한 문제의 악순환이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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