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 변정희 대표 인터뷰
-예술적인 방법으로 불편한 현실 전해
-'완월 아카이브' 통해 역사 기억·기록
-"성매매 근절은 모든 시민의 문제"
최근 부산의 마지막 홍등가, 성매매 집결지인 완월동에 초고층 주상복합건물 건축 계획이 승인돼 논란이 인다. 이대로 재개발 사업이 진행된다면 오히려 불법적인 ‘성매매 카르텔’을 고착화할 수 있단 우려가 나온다. 여성인권지원센터 ‘살림’은 해당 논란의 중심에서 공익적 재개발과 피해 여성 자활을 외친다.
지난 8월 11일 <채널PNU>는 살림을 방문해 변정희 상임대표를 만났다. 그와의 대면 인터뷰를 통해 완월동 재개발 문제와 성매매 집결지의 현실, 그리고 이를 기억하고 기록하고자 하는 ‘완월 아카이브’ 활동에 대해 들었다.
△우선 완월동에 초고층 주상복합건물이 초고속 승인을 받은 현 상황에 대한 살림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정의롭지 못한 처사죠. 무허가 불법 성매매 업소 운영을 해왔던 사람들에게 엄청난 초과 이익을 보장하는 특혜를 주는 게 이상하잖아요. 완월동 건물에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포주니까요. 국내 지역 어디에서도 그런 특혜가 주어진 적은 없습니다. 심지어 완월동이 있는 서구는 쪽방들 밖에 없는데, 대뜸 46층짜리 건물을 짓는다는 것은 도시 계획에도 부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포주에게로 이익이 돌아간다면, 피해 여성들에게는 어떤 문제가 있을까요.
-현재 완월동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은 대부분 성매매 여성입니다. 이 여성들은 심각한 생계 및 주거 문제를 안고 있죠. 하지만 지금의 재개발 계획대로라면 여성의 생계나 주거 문제에 대한 해결책 없이 초고층 건물을 짓는 것에 대한 이익도 전혀 돌아가지 않아요. 그들의 삶을 고려하지 않은거죠. 따라서 여성들은 포주들에게 또다시 종속될 수밖에 없을 거예요. 그럼 문제의 악순환이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우리나라에선 성매매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음에도 사실상 사회의 묵인으로 집결지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일단 완월동을 보면 ‘삐까번쩍’해요. 5층 6층짜리 성매매 업소 건물을 찾아볼 수 있죠. 세상에 어디 성매매가 불법인 나라에서 저런 고층 빌딩이 있을까요. 우리나라는 1961년부터 윤락행위도 방지법에 의해서 성매매가 불법이었는데 말이죠. 고층 성매매 업소가 저렇게 밀집해 있으려면 우리 사회가 묵인해야 하잖아요. 과거부터 일부 사람들 사이에서 ‘성매매가 외화벌이 수단’이라거나 ‘어쩔 수 없이 필요하다’는 등의 이유로 성매매를 정당화하고, 양성화해서 합법적 운영을 해도 된다는 논리가 생겨난 것 같아요.
△성매매 방지를 위해 집결지를 단순 폐지하면 더 깊은 음지에서 성매매가 우려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더라고요. 실제로 그럴까요.
-아직도 한국 사회에서는 정말 많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이게 폭력과 같은 범죄를 강하게 단속하면 음지에서 들어가서 할 것이라는 논리와 똑같다고 생각해요. 성매매를 정당화하기 위해 이런 논리들이 계속 생겨났던 거죠.
그렇다면 성매매 집결지를 폐지하지 않는 것이 더욱 음성화된 성매매를 방지한다는 것인데, 사실 성매매 집결지가 있는 곳에는 그 파생 지역으로서 유흥업소 밀집 지역이 존재합니다. 성매매 집결지가 음성화된 성매매를 규제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을 뿐만 아니고 오히려 부추기는 모습이 된거죠. 저희는 오히려 양성화된 성매매가 음성화된 성매매를 더욱 부추긴다고 봅니다.
△완월동 성착취 문제에 관련한 여성인권의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 ‘완월 아카이브’를 운영하신다고 알고 있습니다. 어떤 활동을 하시는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완월동을 성매매 집결지의 이름을 넘어 성착취 현장을 여성인권의 가치를 일깨우는 공간으로 바꾸기 위해 만들었어요. 최근에는 ‘지도에 없는 마을’, ’말할 수 없는 것들을 예술로 말하는 법’ 등의 전시회를 열고 완월동의 역사와 그곳을 살아가는 여성들의 모습을 담은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완월동 근처 상인이었던 사람들 그리고 활동가들이 완월동 여성을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토대로 작성한 글도 볼 수 있어요.
△전시작 중 소개하고 싶으신 작품이 있다면요.
전시됐던 ‘침묵과 발화’라는 아카이브 집을 소개하고 싶네요. 혹시 성매매 업소에 불빛이 왜 붉은색인지 아세요? 정육점 불빛이 붉은 거랑 똑같아요. 고기가 더 싱싱해 보이잖아요. 여성들을 전시해서 화려하고 ‘싱싱해’ 보이게 만드는 게 성매매 업소의 불빛이라고 볼 수 있어요. 그런데 저희는 성매매 업소의 본질은 붉은빛이 아니라 침묵의 어두운 색깔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 아카이브 집에선 성매매 업소에 대한 고발적 인터뷰와 함께 업소에서 쓰이는 높은 신발 굽, 타이머, 장부 같은 물건을 아카이브 했어요. 어둠 속의 피해자들이 이야기를 발화(發話)하며 빨갛게 불꽃을 터뜨리는 발화(發火)로 표현한거죠.
△완월 아카이브의 이러한 활동이 성매매와 그 실태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문화 예술적인 방법이 성매매의 불편한 현실에 대한 접근성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피해 여성들은 자신의 피해를 설명할 언어가 없어 자신의 피해를 피해라고 얘기하지 못하거든요. 결국 사회 바깥으로 완전히 밀려나기도 하죠. 따라서 대중들에게 피해를 알리고 역사를 제대로 기억하기 위해서는 이런 기록 작업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완월동을 기록하는 완월 아카이브는 문화 예술적인 방법과 접근을 통해 시민들이 용기 내서 참여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고민의 결과죠. 예술가들이 완월동에 관심을 가지고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 낼 때 완월동에 관한 의미도 우리에게 좀 더 잘 다가올 거라 생각해요.
△완월 아카이브 활동을 하며 기억에 남는 일이 있나요?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타인의 문제를 자기 문제로 대입해 생각하는 계기가 된다는 거예요. 성매매 집결지를 내 문제라고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지만, 대부분 사람들의 삶의 경험 속에 성매매 집결지에 대한 인식이 있더라고요. 그냥 스쳐 지나갔든, 먼 지인의 경험이든, 관련된 경험을 자기 기억 속에서 그냥 묻어두고 있다가 완월 아카이브를 통해 이를 이야기할 수 있는 계기가 생겨나는 거죠. 여성들뿐만 아니라 예술가나 시민들이 성매매 집결지 문제를 더 많이 얘기할수록 그것이 성 구매자나 포주, 그리고 착취되는 여성들의 문제가 아니라 부산시나 우리 시민들 전체의 문제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