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PNU 부마민주항쟁 기획
-학생운동 활발하던 과거와 달리
-청년 대다수 사회 문제에 침묵
-참여 힘든 구조적 한계도 있어
-토론 교육과 공론장 등 필요해
2018년 학생 총회 이후 우리 대학에선 대규모의 학생 활동이 열리지 않고 있다. 최근 빚어진 ‘총학생회장 논란’에도 학생들의 집단행동은 미미했다. 목소리를 내봤자 변화를 끌어낼 수 없을 것이란 ‘무력감’과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집단행동에 대한 ‘거부감’에서 벗어나, 청년들의 목소리를 되살리기 위해선 ‘열린 토론’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단 지적이 나온다.
<채널PNU>는 ‘부마민주항쟁 45주년 기획’으로 여러 학과(부)에 소속된 우리 대학 학생들을 만나 그들이 생각하는 ‘사회 문제에 대한 요즘 청년들의 태도’를 들었다. 학생들은 자신의 진로나 취업과 직결된 사안이 아니면 소극적인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겨우 드러낸 목소리조차 그 진의의 순수성을 의심받는 상황에서 실명으로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학생들은 얘기했다.
■지금 우리 대학은
우리 대학의 모든 학생이 한데 모여 대표 의사를 결정하는 ‘학생 총회’는 지난 2018년 12월 14일 열린 것이 마지막이었다. 당시 대학본부가 학사제도 개선 과정에서 학생 의견을 수렴하지 않는 것에 반발해 △제도적 장치 마련 △투표권 보장을 촉구하는 4,231명의 학생이 넉넉한터(넉터)에 모였다(<부대신문> 2018년 12월 14일 보도).
당시 학생총회 TF팀에서 활동했던 김준석(도시공학 석사, 21) 씨는 “공동 학위제 및 복수 학위제라는 큰 안건을 학생 의견 수렴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한다는 점에 문제를 느껴 (총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며 “시험 기간에도 불구하고 학생총회가 성사될 수 있었던 건,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학우분들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의 사회 환경에서 과거와 같은 대규모 학생 활동이 어려워진 이유로 △갈등 △혐오 △극단주의 만연을 꼽았다. 이어 “현재는 어떻게 목소리를 내도 조롱당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학생회 차원에서 비위가 발생할 경우, 문제를 바로잡기 위한 다른 학생회 임원들의 추진력도 두드러졌다. 2018년 11월 50대 총학 ‘위잉위잉’이 본인들에 대한 옹호 여론으로 온라인 커뮤니티 댓글을 조작한 사실이 적발되자, 단과대 학생회장들로 구성된 확대중앙위원회는 사회과학대학 조한수(정치외교학, 12) 학생회장을 필두로 학생권익보호위원회 및 진상조사팀을 꾸려 조사에 착수하기도 했다. 그 결과 총학생회실에서 여론 조작 증거 IP를 발견했고, 10월 20일 비상 대의원총회 임시 회의 소집에 따라 참석 대의원 91명 중 86명의 동의로 총학생회장이 해임됐다(<부대신문> 2018년 10월 21일 보도).
하지만 지난 3월 ‘막말 정치인 응원’ 논란을 빚었던 우리 대학 이창준(지질환경과학, 22) 총학생회장의 문제는 학생회의 추진력 논란까지 빚으며 흐지부지 마무리됐다. 일부 단과대학과 학과 학생회가 추진했던 두 차례의 대의원총회 소집 요청은 거절됐다. 이후 학생회 차원의 의문 제기가 수그러들자 ‘총학생회장단 규탄 학생 모임(비학생회 단체)’이 일반 학생들의 학과 점퍼를 받아 시위를 진행했지만, 단과대 학생회 등이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으면서 총학생회장의 사과문을 끝으로 일단락됐다(<채널PNU> 2024년 5월 17일 보도).
당시 비학생회 단체에서 활동했던 이석재(정치외교학, 19) 씨는 “부산대의 대표성을 총학생회장이 정치적으로 이용한 사건에 깊은 문제의식을 느꼈고 이후 대응도 무책임하다고 생각해 직접 행동에 나서게 됐다”며 “같은 가치를 공유하는 학우들과 뭉쳐 뜻을 펼쳤고 응원하는 분들도 많았으나 각자 일정과 여건으로 활동이 잦아들었다”고 전했다.
이어 이석재 씨는 청년들의 목소리가 묻히지 않으려면 사회적 신뢰 회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씨는 “지금도 사회 문제에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청년들은 있다”며 “경직된 사회 구조를 들여다보고 대화와 이해를 통해 시대정신을 공유해 서로 힘이 되어줄 수 있다는 믿음이 형성되는 것이 침묵을 깨는 출발점”이라고 얘기했다.
■흩어져 침묵하는 청년들
지난달 <채널PNU>가 만난 여러 학부생들은 ‘사회 문제에 대한 청년들의 태도가 최근 5년간 어떻게 변화했는가’라는 질문에 점차 비판의 목소리가 줄어들고 있는 것 같다는 공통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재학생 A(의학, 22) 씨는 “취업난에 각자 살기 바빠 직접적인 손해가 없으면 자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 나서기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며 “주변에서도 ‘의대 증원’건만 목소리를 내지 다른 때엔 사회에 관심 없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최근 청년들이 사회 문제를 두고 느끼는 ‘무력감’을 얘기하는 이들도 있었다. 재학생 B(무역학) 씨 무력감의 원인을 공통된 시대정신의 부재와 갈등에 대한 피로감이라고 분석했다. B 씨는 “이전 세대는 시대정신을 공유하며 독재라는 거악을 타도하는 것으로 뭉칠 수 있었지만 지금 세대는 이익 관계에 따른 다양한 갈등이 나타나 피로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무력감에 공감한다는 C(항공우주공학) 씨도 “사건이 있을 때 모이는 청년의 수가 압도적으로 적다”며 “이길 수 없다는 무력감에 빠져 있을 뿐만 아니라 ‘혐오의 시대’에서 본인의 사회적 입장을 드러내는 건 득보다 실이 많다고 여긴다”고 밝혔다.
온라인에서 익명에 기대 서로의 주장에 불만을 쏟아내는 세태도 공적 문제 제기를 꺼리게 만드는 요인으로 지적됐다. 우리 대학 재학생 D(경제학, 20) 씨는 “미디어 발달로 인해 상대적으로 흥미가 덜한 이슈에 관심을 잘 가지지 않게 됐고 관심을 가져도 주장에 대해 익명으로 공격적인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 꺼리게 된다”고 전했다. 특히 SNS에서 나타나는 문제에 심각성을 느낀다고 답한 재학생 E(23) 씨는 “워낙 자신의 주장을 무턱대고 우기는 경우도 많다보니, 어디까지를 정의로운 목소리로 봐야할지도 모호해진 것 같다”고 얘기했다.
■토론 교육·공론장 마련돼야
전문가들은 청년 침묵의 주된 이유를 환경과 사회적 지위의 변화로 꼽았다. △고용 불안정 △경쟁 구도 심화 등이 사회적 공감대 형성을 어렵게 한다는 것이다. 경북대 김정원(사회학) 교수는 “과거 청년들의 적극적 사회 참여는 취업 걱정이 적었던 환경과 지성인으로서의 책임감이 사회적 상황과 맞물려 일어날 수 있었다”며 “지금은 고학력자의 대중화와 민주화의 진전으로 개인 가치나 관심사가 다양해져 이분법이 통용되지 않는 다원화된 사회이기에 하나의 공감대가 형성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책을 읽고 생각하고 토론하는 활동을 복구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의 사회적 구조가 청년들의 목소리를 틀어막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희(정치외교학) 교수는 “개인이 쉽게 노출되는 지금의 사회는 여론에 휩쓸리기 쉽고, 나와 다른 의견을 이상하게 치부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얘기한다. 이어 “청년은 (공적인 장소에서) 자기검열을 하게 되고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끼리만 소통하는 구조가 형성돼 다양한 토론의 기회가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팬데믹 여파로 최근 청년들이 집단행동에 거부감을 느끼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조항제(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 교수는 “코로나 당시 여럿이서 모이는 걸 금지한 이후 (청년들이) 단체로 목소리를 내는 것에 익숙지 않고 꺼리는 듯 보인다”며 “각자도생의 풍조가 은연중에 퍼져 집단행위의 효용성에 의구심을 가지는 이들이 많고 SNS를 통한 단발적인 의사 표현이 주를 이루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문제 해결을 위해 전문가들이 내놓은 해답은 ‘열린 토론’을 만들기 위한 제도 마련과 인식 개선이다. 청년이 의견을 드러내는 방식이 변화한 만큼 이를 문제 해결로 이어지게 질 수 있도록 기존의 오래된 제도를 손봐야 한다는 것이다. 민 교수는 “독일의 경우 시민 교육을 통해 학생들이 사회 문제에 자연스레 관심을 가지는데 우리나라도 이러한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며 “여론 형성의 장이 점차 온라인으로 옮겨가며 비공식적인 정치 공론장이 확대됨에 따라 이들의 목소리를 흡수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를 함께한 송기인 신부는 “요새는 청년들이 (사회 문제에 대해) 쉬쉬하는데 젊은이들이 생각하고 논의할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하다”며 “사회 문제에 관해 주장하고 떠들기만 할 게 아니라 문제가 있다는 걸 구체적으로 정리하고 지적하며 이를 퍼트리고 키워 나갈 수 있어야 한다”고 얘기했다.
청년들이 사회 문제를 바라보기 위해 관심을 끌 창구도 계속해서 만들어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항제 교수는 “병아리가 껍데기를 깨고 나오려면 닭이 밖에서 도와줘야 한다”며 “청년의 목소리를 많이 들을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어 그들을 무대로 끌어들이는 게 우선이다”고 말했다. 이어 “이후 청년들이 부응하며 서로를 이끌어줘야 한다”고 전했다.
SNS를 통한 의견 표출 방식이 문제의 해결까지 이어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SNS의 공유성과 확장성에 기반해 익명으로 의견을 드러내는 청년도 많은 만큼 이를 주목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부산청년센터 이성훈 주임은 “온라인은 빨리 (이슈가) 뜨는 만큼 금방 사라져 이슈화 이후 해결되는 내용이 거의 없고 후속 조치도 부족하다”며 “해결 과정을 알리는 소통 공간이 있으면 사람들이 계속 관심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고 제안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