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처음 시작된 대동제
-민족·공동체 문화 대변했으나
-90년대 이후 현재의 모습으로
-연예인 콘서트 같다는 지적도
-"학생 중심의 지역 축제 기대"

올해 40돌을 맞은 우리 대학 대동제가 개최 전부터 세간의 입방아에 올랐다. 축제 예산에 수억 원이 투입되는 데다 대부분이 가수 초청비에 쓰인다는 사실에 등록금과 세금 낭비라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반면 서울이 아니면 대중문화를 즐기기 힘든 지역 대학생에게 필요한 복지라는 목소리도 컸다. <채널PNU>는 대동제 40돌을 맞아 그 역사를 짚고, 날 선 공방 속에 앞으로의 대동제가 어떠해야 할지 살펴봤다.

30일 취재를 종합하면 우리 대학의 대동제는 1985년 ‘대동(大同)’, 즉 모두가 함께 어울리고 화합하자는 의미로 시작돼 40년간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해 왔다. 대동제는 군부독재에 맞서던 1980년대의 저항 축제, 자율성과 참여가 중심이던 1990~2000년대 주점 문화의 흥행과 이후의 규제에 이어 오늘날 초청 가수 무대 중심의 축제에 이른 것으로 파악된다.

■1985년, 대동제의 초창기

우리 대학에서 처음으로 대동제 명칭을 사용한 1985년 효원민족대동제 기사.[류해주 기자]
우리 대학에서 처음으로 대동제 명칭을 사용한 1985년 효원민족대동제 기사.[류해주 기자]

대학가 축제에서 ‘대동제’라는 말이 쓰인 것은 1984년부터다.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고려대가 ‘석탑 대동제’라는 이름 아래 축제를 열기 시작하자, 우리 대학에서도 다음 해부터 개교 기념 축제의 이름을 ‘효원 대동제’로 명명했다. 1980년대 중반 이후에는 전국 대학 축제 대부분이 대동제라는 이름을 쓰게 됐다. 그보다 이전인 1960년대의 대학 축제는 ‘축전’으로 불리며 포크댄스, 가장행렬 등 서구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통로 역할을 했다. 이 때문에 당시 일각에서는 대학 축전을 두고 “서양의 카니발적 요소만 가득해 어색한 축제가 진행되고 있다”는 비판을 내놓기도 했다.

이에 학원 민주화가 한창이던 80년대 우리 대학 총학생회(총학)는 축제 형태를 변경하기로 결정했다. 1985년 제17대 총학생회는 기존의 축포, 팝 페스티벌, 낭만의 축제를 거부한다고 밝히며 ‘건강하고 생산적인 대학 문화의 창달’이라는 기치 아래 효원 대동제를 열었다(<부대신문> 1985년 5월 15일 보도). 당시 대동제는 학술제에 가까워, 학생들이 △광주 민주 항쟁 △을숙도 주민 생계 문제 등 한국 사회에 대한 고민과 현실적인 고민을 나누는 자리가 마련됐다. 1980년대 후반 우리 대학 총학생회에서 활동한 A(철학 84, 졸업) 씨는 “운동권이 총학생회장 선거에서 당선된 후 반독재 민주화, 반외세 자주화 투쟁의 기본 원칙하에 대동제가 기획됐다”며 “광주 학살과 정치인 등을 풍자하는 공연이 대동제의 하이라이트였다”고 말했다.

1988년에 이르러서 총학은 “대동제의 모든 초점은 평화통일에 있으며, 구체적으로 분단 올림픽 반대, 공동올림픽 쟁취를 중심으로 모든 행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히고 민족 정신 등을 중시한 대동제를 열기로 결정했다(<부대신문> 1988년 5월 16일 보도). 우리 대학 대동제의 명칭에서도 민족과 민중 중심의 축제였음을 알 수 있다. △87년 ‘효원 민족대동제’ △88년 ‘민족 효원 통일 대동제’ △89년 ‘민족 효원 대동굿’ 등으로 이름에 민족을 포함했다. 1987년에는 총학 차원에서 학교 인근 지역 주민들을 대동제에 초청하기도 했다. A 씨는 “지역 주민들을 초청해 함께 어울리는 마을 축제, 대동 문화 형태를 만들려고 했다”고 덧붙였다.

■1990년대, 점차 다양해진 구성

대동제 특집 만화가 담긴 1997년 5월 12일자 부대신문 기사.[류해주 기자]
대동제 특집 만화가 담긴 1997년 5월 12일자 부대신문 기사.[류해주 기자]
2003년 새벽벌 대동제의 모습. 학생 공연이 주된 콘텐츠였다. [채널PNU DB] 
2003년 새벽벌 대동제의 모습. 학생 공연이 주된 콘텐츠였다. [채널PNU DB] 
2003년 새벽벌 대동제 당시 정문 앞에서 무술 동아리가 시연을 보이고 있다. [채널PNU DB]
2003년 새벽벌 대동제 당시 정문 앞에서 무술 동아리가 시연을 보이고 있다. [채널PNU DB]
2003년 5월 대동제 당시 문창회관 인근에는 주막이 거리를 가득 메웠다. [채널PNU DB]
2003년 5월 대동제 당시 문창회관 인근에는 주막이 거리를 가득 메웠다. [채널PNU DB]

민주화 이후 1990년대 초반까지의 대동제도 학술적인 측면이 강했다. 우리 대학에서도 △90~91년 새벽벌 구국 대동제 △92년 민족 효원 구국 대동제 등 학술제와 체험 행사, 동아리 발표 중심의 축제가 열렸다. 다만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서며 대동제에서 민속적이거나 정치적인 색채가 점차 많이 빠지게 된다. 1996년 총학 기획부장을 맡은 박희선(국어국문학 92, 졸업) 씨는 “대동제를 기획할 때 학생들 스스로 만들고 참여해 주인이 되는 행사로 만드는 것과 시대의 요구를 어떻게 잘 녹여낼지가 가장 큰 고민이었다”며 “대중문화가 대학 내에 끼치는 영향이 커져 공동체 문화와 민족문화에 대한 고민도 컸다”고 밝혔다.

당시 우리 대학의 대동제는 학과별, 단과대별로 대동제에 참여하는 방식이 다양했다. 박 씨가 속한 국문과의 경우 대동제 때 <양영진 열사 추모사업회> 기금 마련을 위한 주점을 미리내골에 열기도 했다. 축제의 마지막 날에는 학생들이 대규모로 참여하는 줄다리기나 대형 캠프파이어로 모두가 함께 행사를 마무리했다.

주점 문화 또한 대동제를 대표하는 행사였다. 2018년 주세법 확대 이후 현재는 자취를 감췄지만, 우리 대학 역시 오랜 기간 주점 문화를 이어 왔다. △학과 △동아리 △학생회 등은 대동제 기간 △문창회관 앞 △넉넉한터 등에 각자의 주점 부스를 열고 주류와 안주를 판매했다. 1980~90년대에는 민주화 열사인 우리 대학 선배의 추모 사업 기금 마련을 위해 주점을 열기도 했고, 2010년대에 들어서는 각 학과가 운영비 마련 및 공동체 결속 등에 주점을 이용하곤 했다. 2010년대 대동제를 경험한 임준형(정치외교학 14, 졸업) 씨는 “집행부 선배가 기획하고 새내기들이 함께 준비하는 식으로 주막을 준비했다”며 “굉장히 시끌벅적하고 에너지 넘쳤던 기억이 있다”고 회상했다.

물론 학내에서 주류를 판매하는 것에 대한 세간의 비판도 있었다. 문화적인 요소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 소비적인 형태로 변질됐다는 비판이 주를 이뤘다. 1995년 5월 15일 <부대신문> 대동제 특집 인터뷰에서 한 학생은 “대동제 행사가 주변 시민들과 함께하는 문화 축제라기보단 학생끼리 먹고 마시고 즐기는 축제 쪽으로 흐른 것 같다”고 말했다. 2018년 교육부가 ‘주류 판매 관련 주세법령 준수 안내 협조’ 공문을 통해 학내 주류 판매를 금지한 이후 우리 대학에서는 주점이 금지됐다(<부대신문> 2018년 5월 13일 보도).

■2000년대, 대중문화 속으로

지난해 5월 우리 대학 대동제에 뉴진스가 섭외되면서 역대 가장 많은 인파가 몰렸다. [채널PNU DB]
지난해 5월 우리 대학 대동제에 뉴진스가 섭외되면서 역대 가장 많은 인파가 몰렸다. [채널PNU DB]

2000년대에 들어서며 대동제는 점차 지금과 같이 대중문화가 중심이 된 모습으로 변모했다. 단합을 통한 공동체의 가치보다는 개성과 다양성을 중시하면서 대중문화를 주름잡는 가수를 축제에 초청하게 된 것이다. △소녀시대 △원더걸스 등 인기 가수가 대학가의 축제에 공연을 다니기 시작했다. 당시 조선일보 등 일간지에서는 ‘유명가수를 보려면 대학가로 가라’라는 등의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민주화 이후 대학생의 사회적 역할이 달라진 면이 대동제 변화에도 영향을 줬다고 분석한다. 과거 대학생은 학생 운동을 통해 사회를 이끄는 젊은 엘리트 집단로 인식된 반면 민주화와 사회의 발전으로 현재 대학생들은 점차 그러한 역할을 잃게 됐다. 그 결과 과거 민족 문화나 공동체 정신 등으로 대변됐던 대동제와 달리, 현재의 축제는 학생들이 생산자가 아닌 상업적인 콘텐츠 소비자가 되는 형식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성균관대 오제연(사학) 교수는 “과거 대학생이라는 집단은 사회 일반의 문화와 구별된 문화가 있었다”며 “(그러나) 현재의 대학생은 기성 사회의 일부에 불과해 일반적인 (유명 가수를 좋아하는) 대중문화 자체가 대학생 문화로 대변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학생들 역시 지금과 같은 대동제를 즐기고 있다. 대학 축제 공연에 인기 연예인을 초청하는 건 전국적인 현상이나 다름없다. 수많은 대학교에서 인기 아이돌과 밴드 가수 등을 초청해 일각으로부터 콘서트와 다를 바 없다는 비판까지 받고 있다. 재학생 A(동물생명자원과학, 21) 씨는 “대동제가 곧 등록금 등 대학에 지불하는 금액에 대한 보상이라고 많이들 느끼는 것 같다”며 “재원 중 일부가 (대동제라는) 문화공연으로 돌아오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세간의 시선은 곱지 않다. 지난 5월 초 우리 대학의 축제 예산이 3억 원가량 투입됐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일부 언론은 초청 가수에 집중한 과도한 예산 책정이라 비판했다. 이에 대해 우리 대학 대동제TF는 지난 5월 19일 입장문을 통해 “수도권 학생들만큼 물리적 어려움 없이 대중문화를 즐길 기회를 드리고 싶었다”며 “지방에 문화 제공의 기회는 주지 않는 엔터테인먼트사의 구조는 이해하지 않고, 단지 국립대학이 큰 돈으로 축제를 진행하려 한다는 점만 포커스를 둬서 기사를 낸 언론에 유감을 표한다”고 말했다.

대동제를 두고 날선 공방이 여전한 가운데 학생 중심의 대동제, 지역사회와 어우러지는 대학 축제에 대한 기대도 여전하다. 초청 가수 문화를 존중하되 과거 학생 중심으로 운영되었던 대동제의 모습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 교수는 “대학 축제는 각 지역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지역사회와 호흡하며 정체성을 키우는 대동제가 되길 바란다”며 “연예인 중심으로 예산을 편성하고 축제를 구성하기보다는 학생들이 중심이 돼 문화를 생성할 수 있는 축제가 되어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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