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부대콘텐츠상 산문 부문 '우수상'
-작품명: 어떤 사랑에는 형태가 있다
-출품자: 이지은(문헌정보학, 23)
새벽 네 시에 전화가 한 통 걸려 왔다 금방 끊겼다. 짧은 수신호의 주인은 할머니였다. 손녀 바쁠까 끔찍이도 아끼는 마음에 결코 먼저 연락하지 않는 우리 할머니. 그의 성정에 무슨 일이 없지 않고서야 이 새벽에 전화를 거실 리가 없었다. 등이 축축했다. 곧바로 전화를 걸었으나 들리는 건 나긋한 목소리가 아니라 거절의 기계음이다. 세 번까지 시도해 보고 눈을 억지로 감았다. 할머니? 대구 이모 집에 가셨어. 혼자도 아니고 괜찮으실 거야. 간밤에 엄마를 깨워 얻은 답에 겨우 기대어 한잠 자고 일어나니 다시 부재중 전화가 한 통 찍혀 있다. 나는 눈도 못 비비고 발신 버튼을 누르며 귀 위로 휴대전화를 가져다 댔다.
놀랐어, 내 새끼. 밤에 잠이 안 와서. 핸드폰 좀 보다가 뭐가 잘 안돼서.... 마악 눌러 보다가....... 호호.
오늘 부산 내려와요?
응, 지금 가고 있다. 아침 차로. 거의 다 왔어.
이따 할머니집 가도 돼요?
오냐. 언제든.
가지런하고 당찬 말씨를 두 귀로 듣자 안심한 몸이 축 늘어졌다. 그래도 두 눈으로 직접 할머니를 보고 싶어 충동적으로 방문 약속을 잡았다. 집으로 찾아뵌 지 오래되기도 했으니 놀란 가슴 쓸어내리러 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할머니 집은 우리 집과 버스로 30분 거리에 있다. 본래 산길을 빙빙 돌아 한 시간이 넘게 걸렸는데, 5년 전 터널을 뚫으면서 시간이 반으로 단축되었다. 그래도 터널 입구에서 내리면 산길을 걸어 내려가야 하는 게 번거롭긴 매한가지라, 엄마 차로 갈 때가 아니면 혼자 가는 마음 먹기는 힘들었지만 그렇다고 못 갈 거리는 아니다.
뜨거운 물로 샤워하고, 깨끗하고 단정한 옷을 골라 입고 화명동행 버스를 탔다. 버스가 어두컴컴한 터널을 달려 나가면 곧바로 환한 시야 아래 할머니 집이 보인다. 그 집은 삼십 년쯤 된 아파트로, 으레 할머니 댁 하면 떠올리는 시골집 같은 것은 아니었으나 앞으로 대천을 품어 그럴듯한 경관을 갖추었다. 제법 현대적이고 멋스러운 집은 한여름 거실에서 창문을 죄다 열어놓으면 힘차게 흐르는 물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언제 와도 변함없는, 시간이 멈춘 장소. 초인종을 누르고 도어락 비밀번호를 눌러 문을 열자, 할머니는 단숨에 현관까지 나와 나를 마중하셨다. 나는 할머니이, 하고 애교 있게 말끝을 늘리며 그를 꼭 끌어안았다. 언젠가 명절 선물로 받았을 한방 샴푸 냄새, 비누 냄새, 백화점 산 고급 스킨 냄새가 몽땅 뒤섞여 할머니 냄새를 만들었다. 할머니도 나 본다고 씻고 기다렸구나. 당신께서 아시는 가장 예쁜 옷을 꺼내 입고. 내가 아르바이트해서 받은 첫 월급으로 선물한 중고가형 스킨케어 제품을 골라 바르시고. 어떤 사랑은 형체를 가지고 있어서 눈에 보이고 코로 맡아 느낄 수 있다. 나는 그것을 깊은 숨으로 만끽하였다.
너 온다고 오리고기를 했어. 근데 먹는지를 몰라서. 오리고기 먹을 줄 알어?
네, 그럼요. 좋아하죠.
실은 그렇게 좋지도 가리지도 않았다. 따지자면 자른 오리고기의 끄트머리에 매달린 비계 껍질 같은 부분의 식감이 싫어서 불호에 가까웠으나 웃으며 냉큼 좋아한다고 대답했다.
밥솥이 증기를 뿜으며 맹렬히 돌아가고 있었다. 내가 오는 시간 맞춰 따뜻한 밥을 내놓으려다가 늦게 밥을 시작해서, 아직 20분은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무안함과 약간의 속상함이 섞인 말에 너스레를 떨었다.
괜찮아요. 대신 그동안 할머니 폰 좀 보면 되지. 뭐가 잘 안됐어요?
그러자 할머니는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화면을 멀리하면서 이것저것 불퉁하게 설명했다. 요지는 문자 메시지 자세히 보기를 눌렀다가, 다른 문자를 볼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뒤로 가기 버튼을 몰라서 아무거나 눌러 보다가 내 번호가 저장된 단축키를 잘못 눌렀다는 해명까지 곁들여졌다.
할머니 이거는, 이 버튼을 누르면 돼. 그리고 이걸 누르면 아래로 내려가거든요. 그럼 옛날 문자도 볼 수 있어요.
할머니는 식탁에 올려져 있던 수첩을 가져와 내 설명을 천천히 받아 적었다. 해방 무렵 태어나 유년 시절 전쟁통을 겪은 할머니는 제대로 된 고등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래도 한글을 곧잘 쓰시는데, 가끔 틀린 글자가 있다. ‘뒤로 가기 버턴 누르기. 옜날 문자도 볼수 있음.’ 내 또래보다는 커다랗게, 정갈하게 적은 글씨에는 정성이 듬뿍 담겨 있었다.
저 수첩에는 별의별 것들이 다 적혀 있다. 할머니는 건강 프로를 보다가 적은 골다공증, 고지혈증 완화 습관들, 일일드라마 방영 시간, 티브이에 나온 예쁜 강아지 이름까지도 손수 적어 놓았다. 바랜 종이를 앞으로 넘기다 보면 내가 알려준 얘기도 잔뜩이었다. 그건 주로 스마트폰 사용법이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나는 할머니의 하나뿐인 휴대폰 선생님이었다. 바쁜 자식들에게 묻기엔 사소한 질문들을 모아 내 얼굴 볼 때마다 물어보셨다. 전화 거는 법, 부재중 전화 확인하는 법, 사진첩 들어가는 법, 사진 찍는 법, 지우는 법.... 몇십 년에 걸쳐 차근히 내 세상을 배우셨다. 그럼에도 할머니 또래는 응달처럼 고여 가고 내 세대 아이들은 나조차도 벅찰 만큼이나 순식간에 바뀌어 가지만. 그래도.
사진을 남기고, 전화하고, 문자 보내고자 하는 마음으로 몇 년이 걸려도 꾸준히 배우는 것이다. 당신의 자식들과 또 그들의 자녀들과 대화하려는 마음 하나로. 나는 같은 것을 열 번 물어보시면 열 번 대답할 수밖에 없다. 틀림없이 열한 번째도 웃으며 하나하나 대답하겠지.
평소보다 많은 밥을 먹었는데 할머니는 냉장고에서 사과를 꺼내 왔다. 배부르다고 투정해도 가차 없다. 거실에 앉아 나는 한 회차도 보지 않은 일일드라마 89편을 보며 함께 악역 욕을 하고, 다음 프로그램이 나오기 전까지 끝없이 반복하는 보험 광고를 배경음 삼아 몇십 번째 듣는 옛날이야기를 들었다. 전쟁 이야기. 지금은 돌아가신 할아버지 얘기. 시집와서 고생하신 얘기. 젊은 날 깜찍한 일탈 같은 것들. 할머니 무릎을 베고 거실 창문 너머로 타고 들어오는, 물이 바위와 부닥치는 소리를 들으며 꾸벅꾸벅 존다.
영원한 여름방학처럼 시간이 흐르지 않는 곳 같지만 그것은 내 소망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안다. 할머니의 수첩에 나의 가르침이 차곡차곡 쌓이고, 휴대폰 사용에 점차 능숙해지는 할머니의 손끝처럼 보지 않으려 해도 바뀌는 것들이 있다. 당장 베고 누운 할머니의 허벅지도 근육이 빠져 초등학생 때 알던 감촉 같지 않았다. 나는 어느새 어른이 되어 하나의 세대가 되고 미래를 이끈다는데, 시간은 또 천천히 야속하게 흘러 내 탄탄한 근육을 모두 앗아가겠지. 그땐 내가 누군가를 뉘여 낮잠을 재우고 있을까. 세상이 귀 기울이지 않아 침묵으로 넘어갈 나의 이야기를 내 핏줄에게 속삭이게 될까.
그날이 오면, 나뿐만 아니라 내 할머니의 얘기도 해야겠다. 군인들이 돌아다니면 파둔 땅굴에 들어가 칠 남매가 떨었다고 말해줄 것이다. 찬물에 손 부르트며 자식 넷에, 남편에, 얹혀살던 군식구의 빨래까지 전부 매일매일 했다고, 어느 날 반자동 세탁기가 나왔을 때 엄마가 그걸 첫째 딸인 나한테만 사다 줘서 참 좋았다는 사사로운 이야기까지 몽땅 전해줄 것이다. 그러면 할머니의 기억도, 나의 기억도 전부 물려줄 수 있겠지. 내 아이는 참 신기한 시절이라 생각하며 전승된 기억을 자양분 삼아 자신의 세대를 만들겠지. 그래도 지금은. 현재에 집중해야지. 시간을 꽉 붙잡고 할머니의 말씀을 내 마음의 수첩에 새기면서. 할머니의 수신음을 받아내면서. 나는 잠에 든 척 할머니의 품에 조금 더 파고들었다.
▶수상소감
제출만으로도 후련했고, 그러나 수상자 발표 날이 다가오자 벌벌 떨었고, 정작 손꼽아 기다리던 수상 안내 전화는 자느라 못 받았던.... 돌이켜 생각해 보면 참 웃긴 시간이었습니다. 실은 글깨나 쓴다고 스스로는 생각하다가, 자그마치 몇 년을 게을리 보내며 글 멀리한 걸 들킬까 봐 두려웠던 것 같습니다. 소홀했던 시간 속에서도 띄엄띄엄 펜 잡을 수 있었고 끝내 상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조흔 언니에게 있습니다. 머잖은 미래에 함께 문학을 하고 있다면 좋겠습니다. 나의 꿈도 당신의 꿈도 응원합니다.
이 글은 저와 할머니의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에, 소설적 허용을 빌려 시간대를 요리조리 뒤바꾸고 붙여 하나의 단편을 만든 셈입니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작품 속의 나와 할머니는 그대로여서, 한참 뒤에도 지금의 감상을 다시 들여다볼 수 있겠지요.
저는 쏟아지는, 형태 있는 사랑 속에서 살아가는 아주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나를자랑스레 여겨 주는 친구들, 괜히 겸연쩍게 축하하는 동생과 아빠, 수상 소식에 나보다 더 기뻐하는 엄마, 무엇을 하든 나를 예뻐하실 할머니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모여 제가 기어코 글을 쓸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모두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형태 있는 사랑을 마음에 품고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할머니. 우리 할머니. 곧 또 찾아뵐게요. 사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