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부대콘텐츠상 산문 부문 '장려상'

-작품명: 대학

-출품자: 김차성(교육학 석사, 23)

부산대학교의 도서관은 3월부터 반수하는 학생들로 붐빈다. 듬성듬성 빈 자리에 겨우 예약을 하고 앉으면, 양옆에서 이어폰을 귀에 꽂고 공책만한 태블릿으로 온라인 강의를 수강하는 학생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볼캡을 눌러쓴 얼굴 옆으로 붉은 여드름. 의자에 걸려 있는 츄리닝 저지. 책상에 올려진 낯선 표지의-그러나 익숙한 서명들. 떠올리기 싫은 그 시절로 급격히 나는 떨어져 버렸다.

정확히 10년 전 내가 저곳에 있었다. 빠른년생이었던 나는 어차피 태어나면서부터 공짜로 1년이 더 주어졌다고 위안하며 매일 도서관이 열리는 9시면 출입문을 통과했다. 그때도 매일 같은 가방을 메고, 매일 같은 자리에 앉아, 같은 책을 꺼내던 학생들이 있었다. 몇 개월 간 안면을 트며 서로를 알고 있었지만, 우리는 서로의 절망만을 알았다. 자기 자신에 대한 증오. 희번덕거리던 경계와 경쟁의 눈빛들.

“재수하고 싶으면 해. 삼수, 사수도 괜찮아. 대한민국에서 학력만큼 효율적인 게 없어. 어릴 때 그 몇 년짜리 노력으로, 몇십 년 동안의 노력도 이겨 먹을 때가 있으니까.”

수능이 끝나고 곧장 내 방에 들어와서, 책가방을 집어 던지고 엎어져서 나는 울음을 터뜨렸다. 가슴이 옥죄는 듯 차올라 숨쉬기 어려웠다. 방바닥에 나뒹굴며 소리 내어 울었다. 비커에 담긴 물 같던 내 마음. 새까만 절망이 그때 한 방울 떨어졌다.

엄마 나 재수할래. 날숨처럼 나온 한마디에 내 어머니는 저렇게 대답하셨다.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어머니는 나보다도 나를 믿어주셨다. 재수도, 삼수도, 아니 십수를 해도 일류 대학교에만 가면 남는 장사라고 하셨다. 학력은 꼬리표가 아니라 얼굴이라고 하셨다. 나는 얼굴을 들고 다니고 싶었다.

12시가 되면 점심을 먹으려는 학생들로 캠퍼스가 왁자지껄하다. 삼삼오오 이야기꽃 피우며 내려가는 대학생들 사이에 끼여버리면, 괜히 츄리닝을 입은 어깨가 더 움츠러든다. 일찍 핀 벚나무는 애써 외면하고, 감지 못한 머리 위로 눌러쓴 볼캡을 더 누르게 된다. 내 뒷모습이 신경 쓰이고 도망치고 싶어진다. 세상이 나를 보고 비웃을 것 같았다.

그래서 늘 한 시간 일찍 나와 봉구스 밥버거 가게로 갔다. 좁은 가게 안의 좁은 한편에 다리를 모으고 앉아 밥버거를 오물거렸다. 1,000원 더 비싼 햄치즈 밥버거는 안 된다. 500원 더 비싼 치즈 밥버거도 안 된다. 스스로에게 허락하던 건 잠이 깨니까 공부에 도움이 된다고 합리화하던 아메리카노 한 잔이었다.

캠퍼스 안 나와 같은 반수생들은 화목한 가정에 얹혀사는 친척처럼, 감사함과 분노감을 숨겨두고 침묵했다. 공부를 하고 있으면 가끔 큰 소리로 대학생들이 웃는 소리가 들린다. 그럴 때마다 나를 감싸던 말 못 할 이질감과 위화감. 분명 무엇인가 잘못되긴 했는데. 수능을 망친 것은 나였으니까, 내가 수능을 잘 봤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테니까, 내 탓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 모든 것을 뒤집어 놓을 수 있다는 희망은 또다시 수능이었다.

반수생들의 오목을 막은 백돌처럼 앉아서, 나는 가방에서 소음이 적고 배터리가 오래가는 최신 노트북을 책상에 올리고 전원을 켠다. 무음 마우스를 꺼내어 연결하고 습관적으로 RISS에 접속한다. 그리곤 바탕화면의 익숙한 한글 파일을 더블 클릭하면, 이제 막 서론을 작성 중이던 나의 졸업 논문이 화면 가득 채워진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났다. 10년 동안 나는 학사 경고도 받아보고, 아르바이트하며 등록금도 내보고, 군대도 다녀왔다. 음악을 하겠다며 자퇴하겠다던 나를 어머니가 말리셨고, 겨우 합의 봤던 휴학이 간발의 차로 나를 다시 궤도로 되돌렸다. 늦은 나이에 합창단 동아리도 들어보고, 졸업도 하고 대학원 면접도 봤다. 그런데 왜 아직도 내 옆에선 똑같은 절망들이 되풀이되고 있는가.

이제 스무 살인 학생들이 대낮에도 도서관에 갇혀서, 따뜻한 햇살과 잔디밭 위의 돗자리가 아니라, 스스로를 비난하면서까지 공부하는 목적이 과연 수학 능력의 함양이었는가. 대단한 수학 능력을 검증받았는지 논문까지 쓰는 나는, 시키는 대로 해왔을 뿐인 학생들에게 패배감을 심어놓고 죄인으로 세뇌시킨 세태에 대해 이야기해야겠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가. 이 구조를 통해 이득을 보는 자는 누구인가. 이런 문책을 할 능력은 내게 없다. 이 순간에도 구조적인 우울 속에서 영문 모르고 내면화된 패배감의 칼날로 자해하고 있을 학생들에게 얘기하고 싶은 게 있을 뿐이다. 학력 앞에 우리 사회는 온당하지 않다. 그 칼날은 일류 대학교에 들어가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때부터는 그 칼날이 스스로가 아닌 타인을 향하게 될 뿐이다.

성적이라는 종속변인에 영향을 미치는 변인들 중 개인의 노력은 일부분일 뿐이다. 누구도 논밭의 풍년과 흉년을 농부의 탓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사회는 말한다. 누구는 비닐하우스로 재배했건, 최고급 농약을 썼건, 자동 수확 차량을 사용했건 상관없다. 네 노력이 부족하지 않았느냐고 말한다. 과연 네 탓이 없느냐고 되묻기만 한다.

노력도 재능이라 불리는 시대가 됐다. 재능이란 재능들은 8할을 수능에서 평가받는다. 대학교 이름은 온갖 재능들의 보증수표가 된다. 그 티켓이 없다면 평생 동안 당신은 왜 학창시절에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가는 곳마다 소명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인생이란 끝없는 바다와 같다는데, 그 위에서 함께 흔들리는 서로를 우리는 부끄럽게만 만들고 있지 않은가.

부산대학교의 도서관은 3월부터 반수하는 학생들로 붐빈다. 대학생 새내기의 알록달록한 염색은 없다. 두껍지만 어쩐지 정이 가는 전공책도 없다. 츄리닝 저지, 후드티, 국어, 수학, 영어. 여기는 재수학원 같다.

대학이라는 주제를 받고 어두운 내용만 써놓은 것 같아 마음이 가볍지 않다. 돌이켜 보면 대학 생활은 젊음과 이음동의어처럼 느껴진다. 젊음이라는 식물이 있다면 대학 생활은 꽃이었다. 대학원생이 된 지금은 대학이라는 글자가 학문으로 읽힌다. 젊음과 학문. 우리나라 대학의 본질은 무엇에 의하여 훼손되고 있는가?

 

▶수상소감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는 조부모님의 입버릇이었다고 제 어머님은 증언하십니다. 조부모님 당신들께서는 공부와 무관한 영역에서 일을 하며 자식들을 키워냈지만, 배운 사람들은 잘 먹고 잘산다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자식이 밥 굶고 살지 않길 바랐기 때문입니다.

그런 조부모님의 슬하에서 자란 어머니에게 공부란 효도였습니다. 가방끈이 짧은 조부모님은 특히 대학에 간 딸을 자랑스레 여기셨다고 합니다. 어머니에게 학력이란 부모님에게 인정받는 이유였습니다. 조부모님은 당신들보다 많이 배운 딸이 하는 말을 잘 따라주셨다고 합니다.

‘공부 잘해야 한다’는 어머님의 입버릇이었습니다. 어머니에게 공부란 자기의 가치감이 걸린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자식이 가치 있는 사람으로 대우받으며 살길 바랐기 때문입니다. 학력으로 사람을 우대하고, 학력으로 사람을 무시하는 사회를 겪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어머님의 손에 자란 저에게 공부란 구애였습니다. 어머니는 공부하는 저의 모습을 흐뭇해하셨고, 높은 점수의 성적표에 반색하셨고, 늦게까지 공부하고 있노라면 그 모습이 아주 어여쁘다는 듯 깎은 과일을 접시에 담아 책상에 두셨습니다.

모든 자식은 부모에게 눈먼 사랑을 한다고 합니다. 부모의 사랑을 위하여 공부하는 자식들은 부모의 기대에 성적이 미치지 못하였을 때 절망합니다. 스스로는 사랑받을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생존을 위한 공부, 우열을 위한 공부, 사랑을 위한 공부. 우리나라의 학력주의는 유구하고 영원할 것만 같습니다.

김차성(교육학 박사, 23)
김차성(교육학 박사,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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