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E. 켈리(정치외교학) 교수 인터뷰
-2017년 BBC 화상 인터뷰로 화제
-"민주주의 시스템 이해하고 투표해야"
-"한국이 독자적인 핵 억제력 갖춰야"
-"더 자유롭고 진보적인 정당 필요해"

현재 한국의 정치는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12.3. 계엄을 계기로 격화된 이념 갈등에 나라가 두 동강이 났대도 과언이 아니다. 나라 밖에선 미국 트럼프 2기 정부가 들어서며 외교적으로도 큰 위기를 맞고 있다. 전 세계에 관세 전쟁을 선포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국의 무역과 안보 문제에도 시선을 두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한국 정치의 더 나은 방향성을 모색하는 일은 필수적이다.

미국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2008년부터 교수로 근무하고 있는 우리 대학 로버트 E. 켈리(정치외교학) 교수는 외신에서 한국 정치에 관해 보도할 때 빠지지 않는 유명인사다. 켈리 교수는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BBC와의 화상 인터뷰를 진행하던 중 어린 자녀들이 등장해 화제가 됐다. 이후에도 BBC와 The New York Times 등 외신 인터뷰에 출연했고, 최근에는 윤석열 씨의 계엄과 관련해 CNN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지난 3월에는 ‘한국이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해 학계에 파장을 일으켰다.

<채널PNU>는 지난 3월 17일 그를 연구실에서 만나 한국 정치의 미래와 그의 수업 등에 관해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 3월 17일 연구실에서 만난 로버트 E. 켈리 교수. [신지영 전문기자]
지난 3월 17일 연구실에서 만난 로버트 E. 켈리 교수. [신지영 전문기자]

△부산대학교에 교수로 부임하신 계기가 있나요?

-아버지가 학자셨습니다. 그러다보니 저도 아버지처럼 되기를 꿈꿨죠. 제가 원래 여행을 즐기는 편인데요. 그래서 다른 나라로 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마침 부산대에서 채용 공고가 발표됐고, 한국에 오기를 결정했습니다. 거창한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한국은 저에게 새로운 경험이 됐습니다. 기대했던 만큼 도착했을 때 신이 나기도 했네요. 어느덧 아내와 결혼한 지 15년이 지났고, 아이들도 꽤 컸습니다. 부산대에서의 삶도 만족스러워서 한국 생활이 행복한 것 같습니다.

△2017년 BBC와의 화상 인터뷰로 화제가 되셨는데요.

-아이들이 정말 예상치 못하게 제 화상 인터뷰에 등장했는데요. 아무래도 어리다 보니 많은 분께서 귀여워해 주신 것 같습니다. 일부러 연출한 장면은 아닌가 의심하는 분들도 계신데, 그런 건 전혀 아니고 정말 돌발적인 상황이었습니다. 이날 이후로 학교에서도 많은 학생들이 저를 알아보더라고요. 지금까지도 그래요. 그래서 저도 항상 새로운 수업을 시작할 때마다 제 소개를 하면서 BBC 인터뷰를 꼭 언급합니다. 가끔은 제가 유명 인사인 것처럼 사인을 해달라고 하기도 하는데요. 그럴 때마다 조금 어색한 건 사실입니다.

△크리스마스, 부활절 등 기념일마다 학생들에게 선물을 나눠주시기도 하고, ‘professor(교수)’라는 호칭보다 ‘doctor(박사)’를 더 선호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기념일을 정말 좋아하는 편이었거든요. 그래서 학생들에게 행사를 챙겨주고 있습니다. 특히 시험 기간에 이런 이벤트를 준비하는 걸 좋아해요. 학생들이 시험 기간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는 걸 알고 있거든요. 사실 그렇게 큰 비용이 드는 것도 아닌데, 이런 소소한 선물로 즐거움을 줄 수 있다는 게 좋습니다.

그리고 ‘교수’보다 ‘박사’라는 호칭을 선호하는 이유는요. 저희 아버지가 대학의 교수로 근무하실 때, 학생들이 저희 아버지를 ‘Dr. Kelly’라고 불렀습니다. 제가 생각해 봐도 ‘교수’라는 호칭은 좀 격식적인 느낌이 강하게 다가옵니다. 저는 학생과 교수가 서로 필요 이상의 위계질서를 따지는 게 아니라, 쉽고 편하게 대하길 원합니다. 그래서 ‘박사’라고 불러주는 게 더 좋은 것 같아요.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해 BBC와 인터뷰하는 로버트 E. 켈리 교수의 모습. [출처: BBC News 유튜브 갈무리]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해 BBC와 인터뷰하는 로버트 E. 켈리 교수의 모습. [출처: BBC News 유튜브 갈무리]

△평소 학생들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고자 노력하시나요?

-아무래도 정치학을 가르치다 보니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정치 환경을 만들 수 있을지를 강조하는데요. 학생들에게 항상 더 나은 유권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대부분은 후보에 대해 깊이 이해하지 못한 상태로 투표합니다. 흔히 유명 정치인의 자녀라던가, 외모가 뛰어나다는 등의 이유로 말이죠. 제가 학생들에게 바라는 것은 민주주의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 안에서 어떤 사람이 대표자가 되어야 하는지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학생들이 정치 시스템을 더 잘 이해해서, 우파나 좌파 같은 진영 논리가 아닌 더 많은 정보에 입각한 투표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최근 트럼프 2기 정부가 들어서면서 전 세계적으로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데요.

-네, 한국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크죠.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 아마 무역 적자와 주한미군의 군사 지원에 대해서 논쟁을 벌일 겁니다. 앞으로의 4년(대통령 임기) 동안 가장 큰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줄줄이 해체하고 있는 동맹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가 되겠네요.

사실 동맹을 유지하고자 한다면, 트럼프 정부에 맞추면 됩니다. 한국이 자존심을 조금 버리고, 트럼프 정부의 요구를 따르면 평화로워질 수 있겠죠.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워낙 외교적으로 무례한 사람이다 보니, 한국은 한국만의 길을 갈 수도 있을 겁니다. 물론 국방에 더 많은 돈을 써야 하고 세금을 올려야 될 수도 있지만, 결국은 한국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트럼프 대통령은 한 군데에 집중하는 시간이 짧아서 금방 다른 이슈로 시선을 돌릴 확률이 높습니다. 그때까지는 한국이 조금 참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최근 논문에서 한국이 핵무기를 보유해야 한다고 진단하셨어요.

-트럼프가 처음 대통령이 된 직후부터 지난 5년 동안, 한국이 핵무기를 갖춰야 한다는 이야기는 계속해서 나왔습니다. 왜냐하면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을 위해 싸워주지 않을 게 분명하니까요. 애초에 그는 어떠한 동맹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미국의 동맹국들, 즉 한국뿐만 아니라 폴란드, 독일, 일본, 호주 등 모두가 자국의 안보를 위해서 극적인 조치를 고려해야 합니다. 만약 북한과 전쟁이 발생한다면, 북한은 핵무기를 사용할 테지만 한미 동맹은 더 이상 미국의 참전을 보장하지 못합니다. 이제는 미국의 핵우산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한국이 독자적인 핵 억제력을 갖춰야만 합니다.

△한국에 더 진보적인 ‘문화적 자유주의 정당’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한국이 틀에 박힌 규범에서 벗어나고, 더 자유로운 사회를 지향하는 정치 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한국에는 시민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 인권, 특히 여성 인권에 대한 담론을 이끌어줄 정당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시장 경제의 강화나 정부 기능 축소 등을 주장할 정도의 자유주의 정당도 없고요. 지금의 ‘더불어민주당’보다 더 개방적이고 진보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조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독일의 자유민주당 같은 곳을 말하는 겁니다. 이를테면, 저는 한국이 이민을 받아들인다면 경제를 되살리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해요. 이는 한국이 타 인종에 대한 더 개방적인 태도를 가지지 않고서는 불가능할 겁니다. 그래서 이러한 문제를 다룰 정당이 한국에 꼭 필요하다고 보는 거죠.

△최근 12.3.계엄과 대통령 탄핵 등을 어떻게 바라보고 계시나요?

-윤석열 대통령이 야당에 대해 가지는 불만은 이해할 수 있으나, 지나치게 과잉 대응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야당의 입김이 강한 국회, 즉 여소야대는 흔히 볼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헌법 중단이 필요한 국가 비상사태로 취급했는데요. 이는 정말 부적절한 행동이었습니다.

국제 사회도 큰 충격을 받았는데요. 대부분 사람들이 한국이 한때 군사 정권이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한국에서 또다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것에 놀란 거죠. 외국인들이 탄핵 절차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이 탄핵에 성공하고 정상으로 돌아갈 거라고 믿는 것 같습니다. 한국이 실패한 민주주의는 아니라는 인식이 있는 건데요. 계엄 당시 한국 사람들이 거리로 나가서 시위하는 모습들을 보고, 민주주의를 지켜낸 국가라는 존경심이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현재 한국은 정치적 양극화가 심각한데 더 나은 한국 정치를 위해 어떤 점을 더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한국의 정치적 양극화가 심각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죠. 양극화뿐만 아니라 초강력 공직인 대통령의 이슈가 결합돼 더 큰 문제가 되는 것 같습니다. (복합적인) 문제 때문에 한국 정치가 이토록 격렬해졌다고 볼 수 있는데요. 대통령의 힘을 약화하거나 연방주의를 도입하는 게 도움이 될 듯합니다.

또한 한국 정치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북한 이슈입니다. 이 부분에 있어서 가장 많은 노력이 필요한데요. 요즘 북한에 대한 인식도 좌우로 극명하게 갈린 것 같습니다. 북한을 어떻게 다룰지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높아져야 한국의 과열된 정치 분위기도 많이 누그러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학생들에게 당부하실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대학에서 즐거운 시간을 마음껏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대학생 때에는 관심 있는 분야를 공부할 수 있는 자유 시간이 많죠. 나이가 들고 인생이 바빠질수록 점차 그런 시간을 잃게 됩니다. 주어진 지금의 시간을 현명하게 사용하고, 책도 많이 읽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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