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에게 정치를 말하다 (상)
-진보 진영 정책 자문위 다수 역임
-"국민 군림하려는 의식이 문제"
-"정치가 삶을 바꾸는 경험 필요"
-"청년은 본질적 문제에 주목해야"

12·3 불법 계엄으로 대한민국의 정치는 군부 독재를 연상케 하며 수십 년가량 후퇴했다는 평을 받았다. 극화된 혐오와 이념 갈등에 지친 시민들은 정치에 불신과 회의감을 드러내거나 정치가 더는 자기 일이 아니라고 자조했다. 하지만 끝내 깊은 좌절감을 이겨낸 시민들은 대한민국 역사의 한가운데 모여 ‘빛의 혁명’이라는 기적을 만들고 6·3 조기 대통령 선거를 이뤄냈다. ‘정자정야(政者正也)’, 정치의 본질은 우리의 삶을 바르게 하는 것. 이번 대선은 정치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동시에 한국 정치의 방향성과 민주주의의 성숙도를 가늠할 중요한 분기점이다.

<채널PNU>는 대선을 앞두고 청년 유권자들이 오늘의 정치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자세로 선거를 마주해야 하는지 살펴보고자 수십 년 동안 정치를 탐독해온 '정치 원로' 2명을 직접 만났다. 그중 한 명인 우리 대학 김진영(정치외교학) 교수를 지난 5월 20일 사회관에서 만났다. 김 교수는 1978년 우리 대학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해 미국 시라큐스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외교부 및 정부 정책자문위원을 다수 역임하는 등 대한민국 정치 학계에서 빠지지 않는 외교 전문가다.

지난 5월 20일 우리 대학 사회관 정치외교학과 세미나실에서 만난 김진영(정치외교학) 교수. [조승완 부대신문 국장]

△대선을 앞두고, 현재 정치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절차적 민주주의(procedural democracy)는 이미 이뤄졌어요. 그런데 국민이 선출한 지도자나 고위 공직자를 보면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공직자는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인데, 그걸 잊은 거예요. 이건 민주주의가 아니거든요. 민주주의는 모든 국민이 평등한 사회고, 권력은 국민이 잠시 맡긴 겁니다. 물론 대다수는 묵묵히 자기 자리에서 성실하게 일하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를 일으키는 소수가 정치를 하겠다고 나서고, 권력을 차지하니 문제가 커집니다. 선거할 때만 유권자에게 고개 숙이고, 당선되면 주민들이 뭘 원하는지 관심도 없어요. 그런 태도가 정치 발전을 막고 있습니다.

이번 선거를 보면서 느낀 건 그런 문제들이 아주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겁니다. 법조계든, 정치권이든, 일부 지도층이 얼마나 특권의식에 젖어 국민을 배신하고 있는지가 보였어요. 대선 토론만 보더라도 상대방 흠집 내기, 감정적인 공격이 너무 많아요. 자기 비전이나 정책으로는 부족하니까 남 헐뜯는 걸로 존재감을 키우려는 거죠. 그건 민주적인 토론도 아니고, 국민에 대한 예의도 아니에요. 그러니 유권자들도 고민해야 해요. 삶의 질을 높이는 정책을 하지 않는 사람들을 왜 계속 대표로 뽑아줘야 하는지, 그런 사람들이 과연 국민의 대표 자격이 있는지 말이에요.

△과거 정치는 지금과는 달랐나요.

-과거 정치, 특히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은 지금과 좀 달랐다고 생각해요. 두 분 모두 구조적인 문제에 집중했던 대통령들이었어요. 김대중 대통령은 IMF 외환위기라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국가를 잘 이끌었고, IT 산업을 준비했죠. 외교나 대북 정책 면에서도 굉장히 안정적으로 대응했다고 봐요. 그 뒤를 이은 노무현 대통령은 지방 균형 발전, 대북 정책, 실질적 민주주의(substantive democracy) 실현 같은 과제에 집중했어요. 말 그대로 사회 구조 자체를 개혁하려고 노력했던 분이라고 생각해요. 또 굉장히 소탈했고, 사람 냄새 나는 정치인이었죠. 그 시절엔 ‘노사모’처럼 정치인을 중심으로 자발적으로 결집한 청년 팬클럽도 생겼고요.

저는 그 당시 미국 유학 중이라 노무현 대통령의 청문회 스타 시절을 직접 보진 못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그 사람을 지지하던 모습은 인상 깊었어요. 하지만 이후 보수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전 정부가 추진했던 여러 진보적 정책이 많이 되돌려졌죠. 지방 분권이나 대북 대화 같은 흐름도 상당 부분 중단됐고요. 과거에는 적어도 정치가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하고, 국민은 그러한 정책의 방향성을 몸소 체감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앞으로의 정치는 어때야할까요.

-지금은 실질적 아젠다 없이 후보자 개인에 대한 공격, 색깔론, 신상 문제가 난무해요. 유권자들이 정치를 신뢰하지 못하게 되죠. 하지만 그런 방식은 자신의 정책적 역량이 부족하다는 걸 감추기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따라서 국민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정부가 들어서야 해요. 정치의 효능감, 그러니까 정치가 삶을 바꿀 수 있다는 경험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그래야 시민들도 ‘정치가 중요하다’는 감각을 회복할 수 있어요. 정치 효능감은 직접 느껴야 생기는 것이니까요.

단 한 번의 투표로 모든 게 달라지진 않겠지만, 그 작은 변화들이 쌓여야 시스템도 바뀔 수 있어요. 우리는 이제 절차적 민주주의를 넘어서서 실질적인 민주주의로 나아가야 합니다. '정치가 국민의 삶에 어떻게 봉사할 수 있는가'. 이게 진짜 정치의 본질이죠. 그런 방향으로 국민들의 관심이 더 모여야 하고요. 정치가 다시 삶을 바꾸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걸 이번 선거가 보여줄 수 있길 바랍니다.

△청년들이 어떤 태도로 우리 정치를 바라봐야 하는지도 궁금합니다.

-청년들이 본질적인 문제에 주목했으면 좋겠어요. 단순히 누가 말 잘하고 이미지 좋은가가 아니라, 누가 실질적으로 불평등을 해소할 정책을 갖고 있는가, 누가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를 줄일 의지가 있는가를 봐야 해요. 그런데 평생 그런 고생 안 해본 사람들은 이런 문제를 피부로 느끼지 못해요. 그래서 청년이야말로 이러한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그런 관점에서 투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청년들이 정치에 더 나은 자세로 참여하려면, 정치적 갈라치기와 이념 프레임에 휘둘리지 않는 것도 중요해요. 요즘 정치가 좌와 우로 나뉘어 있는데, 그건 중요한 쟁점을 가리는 연막일 뿐이에요. 정말 필요한 건 교육, 복지, 노동 등 실질적인 생활 문제를 중심으로 정치 담론이 형성되는 거예요. 대학 교육은 어떻게 바뀌어야 하고 노동 환경은 어떻게 개선돼야 하며, 복지는 어떻게 설계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주제가 중심이 되어야 함께 고민하고 성장할 수 있어요. 청년들이 더 나은 사회, 더 평등한 제도를 만드는 데 주도적으로 참여했으면 해요. 그리고 선동이나 혐오에 흔들리지 말고, 정책 중심의 정치, 삶을 바꾸는 정치를 기준 삼았으면 좋겠습니다.

 

김진영 교수 약력

△ 現부산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前참여정부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 前참여정부 고령화 및 미래사회 위원회 위원

△ 前외교통상부 정책자문위원

△ 前부산대 중국연구소 소장

△ 前부산대 대외교류본부 부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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